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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는 위생의 시대, 공중보건은 왜 더 위태로울까

입력
2017.02.1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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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 때마다 살처분이 요란하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게티이미지뱅크
조류인플루엔자 때마다 살처분이 요란하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게티이미지뱅크

바이러스 대습격

앤드루 니키포룩 지음ㆍ이희수 옮김

알마 발행ㆍ448쪽ㆍ1만8,000원

최근 우리나라에서 조류 인플루엔자(AI)의 발생으로 50일 동안 총 3,000만 마리의 가금이 몰살했다. 계란마저 품귀로 이어져, 이전엔 상상하지도 못했을 ‘계란 프라이’ 사진이 페이스북을 뒤덮기도 했다. 앤드루 니키포룩의 ‘바이러스 대습격’을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조류독감, 광우병, 구제역, 사스, 곰팡이, 콜레라, 신종 플루 등 21세기를 위협하는 생물학적 유행병에 관한 논픽션이다. 첨단 과학에 힘입은 전례 없는 위생의 시대에 왜 이런 질병이 창궐하는 걸까? 그의 진단은 쓰고 맵다.

선박 무역ㆍ항공 여행 보편화로

급속히 퍼지는 구제역ㆍAI…

유전적 다양성 없앤 공장 사육

시한폭탄으로 만든 ‘세계화’

“수억 마리 이상의 새를 땅에 묻은 이 엄청난 닭 유행병은 다름 아닌 세계화의 산물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근본적인 원흉은 산업적 방식으로 생산된 싸구려 고기를 탐닉하는 걸신들린 인간의 식욕이라는 말이다. 새들로 빼곡한 공장형 양계 시설, 만연한 조류 밀수, 저질 백신, 식언을 밥 먹듯 하는 각국 정부 등이 모두 둥지를 더럽히는 데 한 몫 했다."

모든 것이 세계화 때문이라니, 좀 식상한 얘기 아닐까? 그렇지 않다. 인간이 매년 먹는 음식과 구매하는 상품의 80%가 선박에 의해 운반되는데, 화물을 싣지 않은 선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전용 탱크에 싣는 바닷물인 선박 평형수(ballast water)가 문제의 하나. 30억 내지 50억톤의 선박평형수가 이용되고 버려진다. 이때 매일 7,000종 이상의 해양미생물, 해파리, 식물, 어류, 물벼룩의 서식지가 바뀌는데 이 결과 수상 생태계가 교란된다. 심지어는 콜레라균마저 포함되어 운반된다.

세계화는 항공 여행을 보편화시켰다. 유행병이 번지는 속도 또한 전례없이 빠르며 미처 손쓸 새가 없어 더 치명적이다. 전세계적 양식이 되어버린, 축산 효율화의 극대화인 공장형 사육은 유전적 다양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이제 축산 자체가 ‘시한 폭탄’이 되어 버렸다.

해결책이 있을까? 저자는 실천 목록을 길게 제시하는데, 줄여서 말하자면 “오만한 무지를 청산하고, 크고 강한 것을 동경하는데 의문을 제기하며, 개인적, 지역적 미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롭지만, 공중보건은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는 상황이다. 더구나 아이를 낳고 키우려는 이들의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율라 비스(Eula Biss)는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를 건강하기 키우기 위해 이런 저런 갈등을 겪는 중에 특히 백신 접종을 고민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상식과는 다르게 일부 미국 중산층 부모에게는 ‘홍역, 볼거리, 풍진(MMR) 백신’이 자폐증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백신 거부자가 늘고 있다. 신종 독감 백신을 맞힐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어머니들 사이에 토론이 벌어진다. 저자는 그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ㆍ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312쪽ㆍ1만5,000원

“그들은 내가 그 기사에서 안도감을 느꼈던 바로 그 이유, 즉 어떠한 의심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 때문에 도리어 그 기사가 모욕적이라고 느꼈다. 언론이 믿음직한 정보원이 못 된다는 것은 정부가 무능하다는 것, 대형 제약 회사들이 의학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내가 다른 어머니들과 나눈 대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였다.”

신종독감 백신을 맞을까 말까

백신거부가 늘어나는 세태에

“접종은 집단면역을 위한 예금”

차분한 목소리로 설득

과학 문명에 대한 미국 중산층 일부의 불신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저널리스트로서 광범위한 자료 섭렵, 전문가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전문가 수준의 의학 지식을 체계화하고 이를 근거로 독자를 설득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방식을 내려놓는다.

차분한 목소리로 왜 백신 거부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공감력 있게 파고든다. 이 때 수전 손택의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질병에 대한 한 시대의 상투적 표현이나 은유에 물들지 않고, 그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는 손택의 생각도 다섯 살에 결핵으로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두 번이나 암에 걸렸던 체험에서 나왔다.

비스는 아킬레우스에 관한 그리스 신화, 볼테르의 ‘캉디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등에 나오는 면역을 둘러싼 은유를 탐구하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깔려있는 ‘자연은 선’이라는 사고를 비판적으로 되짚는다.

“우리가 백신의 효과를 따질 때 그것이 하나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만 따지지 않고 공동체의 집합적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까지 따진다면, 백신 접종을 면역에 대한 예금으로 상상해도 썩 괜찮을 것이다. 그 은행에 돈을 넣는다는 건 스스로의 면역으로 보호받을 능력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 면역(herd immunity)의 원리이고, 집단 접종이 개인 접종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은 바로 이 집단 면역 덕분이다.”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이 아니고서야 친구의 말처럼 나직하면서도 정확한 설명에 설득 당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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