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그래도 추모하는 자리를 꼭 한 번 만들고 싶었는데, 이런 공식적인 자리가 마련돼 자연스럽게 추모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8일 오후 서울 내수동 복합문화공간 워켄드 아크홀에서 열린 제57회 한국출판문화상 아동ㆍ청소년부문 수상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북콘서트가 끝난 뒤 박지리 작가의 작품을 도맡아 온 사계절출판사 김태희 팀장의 표정은 맑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박 작가는 악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내놓은 뒤 세상을 떠났다.
소설은 ‘러너 영–니스 영–다윈 영’ 3대에 걸친 악의 탄생과 진화 문제를 다루면서 1~9지구까지 나눠진 철저한 계급사회를 묘사해냈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높았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은 그저 착하고 예쁘고 교훈적인 것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아동청소년 문학계에서는 ‘과연 박지리!’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고, 출판문화상 심사 때도 이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그래서인지 이날 북콘서트는 그야말로 ‘덕심의 향연’이었다.
김해원 작가는 “고인이 2008년 ‘합체’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았을 때 축사를 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얘길 했는데, 이후 내놓는 작품들 모두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때마다 ‘정말 홀로 끝없이 달려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대해서도 “200자 원고지 2,890매에 이르는 대작인데도 중반부 이후에는 독자조차 못 따라 갈 정도로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진다”면서 “정말 대단한 힘을 갖춘 작품”이라 평가했다.
김태희 팀장은 “무협명랑코믹물인 ‘합체’ 이후 대학 청소 노동자 문제를 다룬 ‘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내놓는데 여기서는 완전히 세상을 다 산 듯한 50~60대의 심리를 능숙하게 그려내서 원고를 받아 들곤 놀랬던 기억이 있다”고 되돌아봤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는 “박지리 작가가 25살에 데뷔했는데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경험 부족에서 오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면서 “그런데 박 작가는 그런 게 없어서 박지리는 ‘1인 아니라 집단일 것이다’, ‘다른 비선 실세가 있다’는 농담이 오가기도 했고 저도 개인적으로는 ‘박지리 다면체설’ 지지자”라며 웃었다. 김 평론가는 “이 작품은 우리 뿐 아니라 세계의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 말했다.
북콘서트를 마무리한 것은 서지은 작가가 완성한, 소설 속 가수 벤 헐크의 노래 ‘그림자’였다. 서 작가는 “책 표지를 보곤 볕 좋은 날, 밝은 날에 읽어야 할 것만 같아 거실에 뒀는데, 그러다 결국 밤마다 조금씩 읽게 됐고 이 책을 음악극으로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빛을 등지고 길게 걸어. 어둠이 거울 되어 그를 비출 거야.’ 긴 여운을 남기는 가사와 함께 북콘서트는 끝났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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