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캐나다(1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우승 팀 체코(랭킹 6위), 얼음 강국 스위스(7위).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23위)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A조에 묶인 팀 들이다. 랭킹이나 선수 면면, 자국 내 저변을 따져볼 때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냉정하게 1승은커녕 1골이라도 넣을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을 만큼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일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언제나 이변이 일어난다. 2002년 한ㆍ일 축구 월드컵 당시 대표팀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4강 신화를 일궈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아이스하키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훈련을 진행 중인 대표팀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영건’ 신상훈(24)은 “노력이 있어야 기적도 있다”며 “우리는 기적을 일으킬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조민호(30)는 “항상 잠들기 전 올림픽에서 뛰는 그림을 머리 속에 그린다”면서 “우리의 도전은 또 하나의 감동 드라마를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백지선 감독 “개인은 작아도 팀은 작지 않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출신 백지선(50) 감독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구원 투수다. 2014년 7월 지휘봉을 잡은 뒤 패배에 익숙했던 선수들에게 ‘이기는 맛’을 알게 해줬다. 지난해 11월에는 헝가리 유로 챌린지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백 감독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며 “결과를 떠나 우리는 승리자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백 감독은 최근 외신들이 귀화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추자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요즘 하키는 체구가 크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NHL 최고 선수들도 몸집이 작다. 기술과 스피드로 이겨낼 수 있다”며 “우리 선수들의 면면을 볼 때 개인은 작을지 몰라도 팀은 작지 않다. 하키는 팀 스포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이 열릴 때 한국에 머물고 있었던 백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큰 업적을 이뤄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온 나라가 축구로 인해 흥겨워하는 것을 인상 깊게 봤다”면서 “한국 대표팀이 스페인을 이길 줄 누가 알았겠느냐. 스포츠는 언제나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이변도 존재한다. 하키도 상대 팀 중요한 선수가 부상 등으로 못 나올 수도 있고, 빙면이 고르지 않아 퍽이 이상하게 튀거나 보드를 맞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튈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팀 공격 포인트 1, 2위‘뜨거운 형제’
아이스하키는 1라인부터 4라인까지 라인 별로 5명씩 꾸린다. 공격진은 3명이 한 조로 이뤄지는데 김기성(32)-김상욱(29) 형제는 당당히 1라인에서 호흡을 맞추며 공격을 이끌고 있다. 둘은 2013년 이후 대표팀 공격 포인트에서 나란히 1,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기성은 15골 16어시스트, 김상욱은 7골 22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형제는 홍익초-경성중-경성고-연세대-안양 한라-국군체육부대에 이르기까지 똑 같은 코스를 밟아왔고, 현재 소속팀 안양 한라에서도 같은 라인으로 뛰고 있다.
형 김기성은 “동생과 세 살 터울이라 사실 호흡을 맞춘 시간은 길지 않다”면서도 “경기를 뛸 때 동생이 왠지 내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고 퍽을 보내면 정말로 그 자리에 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생 김상욱은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형이 똑같이 했다. 이래서 역시 형제인가보다”라며 웃은 뒤 “형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3년 이후 대표팀 최다 포인트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줄 몰랐던 이들은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실감도 난다”며 “올림픽에 앞서 이달 중순 열리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이 분위기를 올림픽까지 끌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야구 투수처럼 최고 비중 차지하는 수문장 맷 달튼
아이스하키에서 팀 내 최고 비중을 차지하는 포지션은 수문장(골리)이다. 야구가 ‘투수 놀음’인 것처럼 아이스하키는 ‘골리 놀음’이라고 할 수 있다. 수 없이 쏟아지는 빠른 속도의 슛을 온 몸으로 막아내면 상대 팀은 맥이 빠진다.
대표팀의 최후방은 ‘푸른 눈의 태극전사’ 맷 달튼(31)이 지킨다. 캐나다 출신인 달튼은 지난해 4월 특별귀화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9년 NHL 팀인 보스턴 브루인스와 계약해 꿈의 무대를 누비는 듯 했지만 단 한번 출전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 꿈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로 떠났다. 2014년 러시아 리그(KHL)에서 뛰었던 달튼은 소치올림픽을 빙판이 아닌 관중석으로 지켜봤고, 현장의 뜨거운 열기에 푹 빠졌다. 러시아 리그의 수준은 높았지만 삶의 질이 열악했던 탓에 새 둥지를 물색하던 중 안양 한라로부터 영입 제의가 왔다. 브락 라던스키(안양 한라)와 마이클 스위프트(하이원)가 한국으로 귀화해 뛰는 것을 알고 있었던 달튼은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안고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다가오는 올림픽에 대해 “한 나라를 대표해 나간다는 자체 만으로 큰 영예”라며 “소치올림픽 때 올림픽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껴 꼭 나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달튼의 강점은 동체시력이다. 야구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동체시력이 좋은 타자가 타격 성적도 빼어나듯이 아이스하키에서도 시속 170㎞에 달하는 슈팅을 막아내기 위해 동체시력이 중요하다. 남들보다 더 빨리 보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달튼은 “상대 슈팅에 많은 부담감과 압박을 받지만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골을 많이 먹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빨리 털어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고양=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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