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학교 성폭력 민원 750건 분석 결과
A씨 딸(9)이 지난해 3월 충격적인 얘기를 뒤늦게 털어놓았다. 2년 전 5~6월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 6학년 남학생이 태권도장 화장실에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거나 유사성행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A씨는 딸이 소변장애와 정서불안 증상을 보이던 게 그 즈음 뒤라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A씨는 수소문 끝에 가해학생이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1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중학교에 진학한 사실을 알고, 곧바로 가해자에 대한 전학 조치와 행정 제재를 취해달라는 호소문을 국민신문고에 올렸다.
초등학생이 초등학생에게 저지르는 성폭력이 위험 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3년간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학교 성폭력 민원 750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학생인 성폭력 건수가 255건(34%)으로 가장 많았다. 흔히 학교 성폭력으로 거론되는 교사가 학생에게 저지른 성폭력(247건)을 앞질렀다. 특히 초등학생 간에 발생한 성폭력 민원은 89건으로, 중학교(66건) 고등학교(27건) 대학교(27건)를 압도했다. 권익위는 “학생 간 성폭력 사례 열에 아홉은 같은 학교 남학생이 여학생을 대상으로 저지른 경우였다”며 “경찰 등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자체 진상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학교 당국이 ‘어린이’들 간에 대수롭지 않은 장난으로 치부하면서 초등학교 성폭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하고,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 3명이 쉬는 시간에 여학생에게 스마트폰으로 음란물을 강제로 보여줬다며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사건이 대표적이다. 남학생 중 1명은 이전에도 여학생들에게 게임을 빌미로 “네 가슴을 만져도 되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담임 교사는 “여학생이 (자의로) 스마트폰 화면을 봤기 때문에 남학생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게 제보자의 주장이다. 같은 학교 교사의 딸이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는 등 성추행을 지속해 정서불안 증상을 겪고 있다는 여학생 사례도 있었다.
권익위 관계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올바른 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학교 성폭력 예방에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분석 결과”라며 “학교 측도 사건 발생시 피해자의 고충을 충분히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석 대상 750건 중엔 성추행(58.65)이 가장 많았고, 성폭행(28.9%) 성희롱(12.5%)이 뒤를 이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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