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 따스한 여수와 순천은 기차여행 상품 ‘내일로’의 필수코스다. 20대가 즐겨 찾는 여행지에 손꼽힌다는 것은 음식 위에 살살 녹은 치즈처럼 젊은 층의 입맛에 맞는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기본이고 싱싱한 먹거리와 추억이 되는 즐길거리 또한 널렸다.
▦순천만정원과 여수밤바다…볼거리는 A0.
아름다운 풍경과 시각적 즐거움, 여수와 순천은 기본기에 충실한 여행지다. 먼저 국제적 관광지로 발돋움한 순천만국가정원. 이곳에서 겨울마다 열리는 별빛축제는 갈대 숲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별빛축제는 순천동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분리된 2개의 정원 중 서원(서쪽정원)에서 열린다. 오후 6시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졌다가 소등되고, 10여분 후에는 깜깜한 정원이 일시에 밝아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건물 파사드를 활용한 공연이 열리고, 정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큐브(트램)도 운행해 내용면에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국가정원의 별빛축제는 이달 28일까지 매일 계속된다. 아쉽게도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순천만습지는 지난해 12월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실 야경은 여수가 더 유명하다. ‘여수 밤바다’를 나직한 톤으로 속삭이던 노래는 인기가 한풀 꺾였지만 밤바다의 정취는 그대로다. 돌산공원에 오르면 순천만정원에서 본듯한 불빛터널이 반긴다. 짧은 터널을 지나 돌산대교가 내려다보이는 데크에 다다르면 모두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형형색색 변화하는 돌산대교의 두 기둥과 까만 바다 위로 번지는 불빛들을 보면 왜 ‘여수 밤바다’인지 이해할 수 있다.
돌산공원은 여수해상케이블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케이블카는 돌산공원에서 오동도 입구까지 연결되는 약 15분 코스다. 바닥이 유리로 된 크리스털캐빈을 타면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속이 뻥 뚫린다. 케이블카는 왕복권을 구입해 시간 간격을 두고 탑승하면 좋다. 예를 들면, 오후 2시경 돌산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햇빛을 반사하는 푸른 바다를 보며 오동도로 넘어간다. 아직 만개하진 않았으나 동백으로 유명한 오동도 산책코스를 걷는다. 등대에 오르면 빼곡한 동백 숲을 감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해가 떨어질 무렵 노을 속에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돌산공원으로 돌아오면 야경을 즐기기 딱 좋은 시간이다. 케이블카는 왕복 기준 일반캐빈 1만3,000원, 크리스털캐빈 2만원이다.
<여수해상케이블카 타임랩스 영상>
▦게장ㆍ해물삼합ㆍ꼬막정식…먹거리는 A+.
SNS에 먹거리 콘텐츠가 범람하는 데에는 유명 맛집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트렌드가 반영돼 있다. 맛은 물론 서비스, 청결도, 독특함까지 요즘 여행객은 넘쳐나는 맛집을 다각도로 분석하는데, 여수와 순천의 먹거리는 이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관광지의 먹거리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혹평을 받는 사실에 비춰보면 여수와 순천의 음식 가격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여수 사람들은 게장 집에 잘 안 가요. 아무데서나 백반 시키면 따라 나오는데.” 여수의 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자의 말이다. 그렇다. 작은 돌게나 꽃게로 만든 게장은 시내 어느 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다. 서교동에 위치한 ‘로타리식당’은 게장이 포함된 백반정식으로 유명하다. 단돈 6,000원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은 물론, 게장국과 갓김치를 포함한 여러 밑반찬들이 깔린다. 게장이 부족하면 몇 조각 더 얹어주는 인심까지 푸짐하다. 고급 음식은 아니지만 밥 한 그릇 비우는 데는 이만한 메뉴가 없다.
술을 곁들이고 싶다면 여수 해물삼합이 좋다. 돼지고기ㆍ해산물ㆍ묵은지 3가지가 여수의 삼합이다. 해산물은 키조개를 기본으로 가격에 따라 낙지와 새우, 다른 조개류가 추가된다. 지글지글 불판 위의 비주얼부터 든든하다. 돼지고기와 해산물의 적당한 기름은 자연스레 알코올을 부르고, 전라도의 묵은지가 느끼한 맛을 깔끔하게 잡아줘 질리지도 않는다.
기존에는 교동의 포차거리가 해물삼합으로 유명했다. 맛을 찾는 여행객들은 게장으로 식사를 한 후 밤이 되면 이 거리로 몰렸다. 허름한 시장 거리지만 맛은 당당히 추천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다. 최근엔 해양공원에 위치한 낭만포차가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0개 남짓의 포장마차가 밤바다를 끼고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간장새우, 해물전골 등 가게마다 메뉴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표 메뉴는 역시 해물삼합이다. 여수 밤바다가 분위기까지 보장하니 나이를 불문하고 인기몰이 중이다. 가격은 한 테이블에 3만원에서 5만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고급스러운 식사를 원한다면 순천의 꼬막정식이 있다. 삶은 꼬막, 양념 꼬막, 매콤한 무침, 담백한 국물, 꼬막 전과 꼬막 탕수까지 말 그대로 꼬막이 한 상 가득한 정식이다. 특히 삶은 꼬막은 재료가 신선해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다. 집게를 이용해 직접 꼬막을 열어 먹는 재미도 있다. 순천 중심부는 물론 벌교와 순천 사이 낙안읍성 근처에도 꼬막정식 식당들이 모여있다. 어딜 가나 메뉴는 비슷하고 가격은 정식 1인분 1만5,000원 수준이다. 양이 많지 않은 이들이라면, 2인분에 공기 밥만 추가해도 3명이 즐길 수 있을 만큼 푸짐하다.
▦드라마촬영장과 낙안읍성에 게스트하우스 파티까지…즐길거리도 A+.
여행에서 추억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순천의 드라마촬영장은 친구, 연인, 가족과 추억을 남기기에 좋은 장소다. ‘제빵왕 김탁구’, ‘자이언트’ 등의 드라마와 영화 ‘늑대소년’, ‘강남1970’ 의 배경이 됐던 곳이다. 4만㎡ 면적에 185채의 건물이 들어서 다른 지역의 세트장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다. 1950~60년대 순천읍, 70년대 서울 봉천동 달동네, 80년대 서울 변두리로 나뉘어 있으며 고등학교 교실, 고고장, 극장 등 시대상을 구체화한 건물들이 늘어서있다. 전주에서 온 유수민(24)씨는 한복이나 교복을 입고 놀 수 있는 곳이 전주에도 있지만, 규모와 다양성에서 이곳이 나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중고생과 중ㆍ장년뿐 아니라 옛날 교복을 입은 외국인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부산에서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온 러시아인 이리나(21)씨는 모국에는 교복이 많이 사라졌는데 한국의 옛날 교복을 체험하게 돼 재미있다며 웃었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교복 대여료는 50분에 2,000원이다. 삼각대도 1시간 5,000원에 대여할 수 있다.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풍경이면서도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민속마을이자 체험의 장이다. 공식적으로 안내하는 상설 체험만 20가지에 이른다. 그네를 타면서, 두부를 만들면서, 또는 곤장을 때리고 맞는 포즈를 취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다. 다만, 겨울철에는 쉬는 체험장이 많고 성곽의 풍경도 봄이 오기 전까진 다소 황량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로망이다. 게스트하우스가 많은 여수와 순천이라면 실현 가능하다. 매일 밤 펼쳐지는 맥주를 곁들인 파티는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학생부터 전문직 종사자까지 다양한 직업의 여행객들이 모여 색다른 인연을 만드는 대화의 장이다. 일정이 맞는 이들은 다음날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자정이 지나 교동시장에서 2차를 하고, 다음날 게장 백반으로 점심을 함께하는 식이다. 차를 나눠 타거나 정보를 공유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 ‘혼행족’(혼자 여행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밤 늦은 시각 외출을 제한하는 업소도 있으니 문의 후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순천 드라마세트장 영상>
[여수ㆍ순천 여행 팁]
●KTX를 이용하면 용산(서울)역에서 여수EXPO역까지 약 3시간, 순천까지는 2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여수와 순천간 대중교통 이동은 열차가 가장 빠르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KTX를 제외한 일반열차가 많지 않고, 버스를 이용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여수ㆍ순천ㆍ보성ㆍ광양 4개 지자체를 ‘남도바닷길’이라는 주제로 묶어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으로 선정해 자연과 역사, 낭만과 젊음의 힐링여행 코스로 부각하고 있다. 또한 ‘남도에서의 힐링, 여수와 순천’이라는 글로컬 관광상품을 개발해 여수 밤바다 야경과 순천만국가정원ㆍ순천만습지 노을을 세계적 관광 자원으로 알려 나갈 계획이다.
민준호 인턴기자(서울대 사회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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