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맞은 각급 학교가 졸업식을 치르면 다시 봄 방학에 들어간다. 절기는 봄인데 날씨는 한겨울, 2월 여행지는 마음과 풍경의 간극이 크다. 이번 봄 방학엔 아이들과 전통이 깃든 마을로 체험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가 2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한옥마을 힐링 여행지’을 선정했다. 겨울과 봄 사이 가족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주제다.
▦바다 향 머금은 고택,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자취를 되새기는 곳이다. 사임당은 친정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 강릉에 기거하다가 별당인 오죽헌에서 율곡을 낳았다. 건물 주변은 그 이름의 유래가 된 검은 대나무, 오죽(烏竹)이 감싸고 있다. 오죽헌 옆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율곡매가 멋들어지게 서있는데, 사임당의 매화 그림과 율곡이 쓰던 벼루 장식의 소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랑채와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 정조대왕의 사연이 깃든 어제각 등도 함께 둘러볼 곳이다. 오죽헌 주변에는 오죽헌시립미술관, 율곡인성교육관, 동양자수박물관, 강릉예술창작인촌 등이 몰려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강릉오죽한옥마을이 문을 열었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내부는 현대식 편의시설을 갖췄다. 일반형부터 고급형까지 30여 객실 모두 온돌방이다. 가격은 비수기기준 5만~15만원 선. ojuk.or.kr 033-655-1117.
선교장은 오죽헌에서 경포대 방향으로 2km 떨어져 있다. 영동지방 최고의 고택인 선교장은 300여년 동안 원형이 잘 보존된 사대부 가옥이다.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이 지었으며 10대에 걸쳐 증축했다.
선교장은 자체도 볼거리지만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 뒤뜰 언덕의 노송 숲 산책도 품격 있고, 고택을 나서면 경포호와 경포해변으로 연결된다. 경포호 주변에는 참소리축음기박물관, 에디슨과학박물관이 소소한 볼거리다. 강릉의 대표 먹거리 촌 초당두부마을도 인근이다. 선교장도 한옥 숙박을 운영하는데 가격은 작은방 8만원에서부터 건물 전체 30만원 등 다양하다. www.knsgj.net 033-648-5303.
▦500년 세월 쌓인 마을 길, 아산 외암마을
충남 아산 외암마을은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 설화산 자락 남서쪽 양지바른 곳에 들어선 마을 앞으로 외암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약 500년 전 참봉을 지낸 진한평의 맏딸과 혼인한 안동의 예안 이씨 이사종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현재 기와집과 초가집 등 전통가옥 60여 채가 돌담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외암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으로는 건재고택과 참판댁을 꼽는다. 건재고택은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이 살던 집으로,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외암 이간이 태어난 곳이다. 내부를 들어갈 수 없는 대신 아름다운 돌담이 최고의 포토 존 역할을 담당한다.
이조참판을 지낸 이정렬이 고종에게 하사받은 참판댁은 연엽주가 유명하다. 가뭄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생각해 고종이 반주까지 끊자, 이를 죄스럽게 여긴 이원집이 누룩과 고두밥을 연잎에 싸서 삭힌 술을 빚어 올린 데서 연유한 술이다. 참판댁에서 직접 빚은 연엽주를 구입할 수 있다. 대부분 주민이 살고 있어 직접 들어가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대신 한옥과 어우러진 고샅이나 정감 어린 농촌 풍경을 보는 것으로도 걸음이 가벼워진다.
외암마을은 참판댁, 신창댁, 풍덕고택를 포함해 20가구가 민박을 운영한다. 가격은 방 1칸 7만원에서 1채 33만원까지 다양하다. 마을에서는 한지 손거울 만들기, 율무 팔찌 만들기, 엿 만들기 등 전통체험도 진행한다. oeam.co.kr 041-541-0848.
인근 관광지로는 소나무 숲길이 멋진 봉곡사가 6km, 현충사가 11km, 아산환경과학공원이 18km 떨어져 있다.
▦타임머신 타고 600년 전으로,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
순천시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다. 조선시대 모습이 잘 보존된 마을에 지금도 100세대 가까이 살고 있다. 금전산 자락 낙안 들에 자리잡은 읍성은 태조 6년(1397)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 축성 당시에는 토성이었으나 세종 때 돌로 다시 쌓았다. 둘레가 1,410m이고, 동·서·남쪽에 각각 성문이 있다.
낙안읍성을 관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문으로 들어가 북측 관아를 둘러본 후, 서문에서 성곽길에 올라 남측 성곽을 따라 동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서문과 남문 사이 전망대에 이르면 마을 풍경이 사극의 한 장면처럼 고즈넉하게 펼쳐진다.
마을 북쪽 객사 뒤에는 이순신 장군이 심었다는 푸조나무가 있고, 동헌 앞에는 납월(음력 12월)에 핀다는 납매 한 그루가 붉고 여린 꽃봉오리를 피웠다. 죄인을 추궁하는 모습을 재현한 동헌 앞마당은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다. 저잣거리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이 들어섰다. 국밥, 백반, 비빔밥, 칼국수, 파전, 빈대떡 등 메뉴는 다양하다.
읍성의 37가구가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초가인 겉모양과 달리 내부에 욕실과 화장실을 갖췄다. 가격은 1박 5만원 선. 민박 전화번호는 낙안읍성 홈페이지(suncheon.go.kr/nagan)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통합예약시스템이 없어 다소 불편하다.
순천에서도 매화가 가장 일찍 피는 금둔사가 낙안읍성에서 2km 거리이고, 태고종의 본산 선암사, 백매ㆍ홍매가 매혹적인 송광사가 차로 각각 3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엿 만들기ㆍ 딸기 따기에 웃음이 절로, 고령 개실마을
경북 고령 쌍림면에 위치한 개실마을은 조선시대 홍문관, 경기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이 모여 사는 곳이다. 60여 가구 중 80%가 기와집인 한옥마을로, 주위의 대숲과 솔숲이 어우러져 더없이 평화롭다.
여든 넘은 종부가 지키는 점필재 종택은 반질반질 윤이 난다. 안채는 1878년에 중수했고, 사랑채는 1812년에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가문에 전해지는 유물(원본은 대가야박물관 소장) 사진과 김종직의 일생을 보여주는 서림각이 사랑채 옆에 있다.
개실마을의 대표 체험은 엿 만들기이다. 걸쭉해진 조청을 살짝 식힌 다음 두 명이 맞잡고 길게 늘였다가 접기를 반복한다. 짙은 갈색이 차츰 옅어져 완성될 즈음에는 아이보리색으로 변한다. 늘이다가 재빨리 접는 과정이 쉽지 않고, 처지거나 끊어지기 일쑤다. 실수하는 게 당연하고 그래서 더 즐겁다. 엿가락이 굳은 뒤 톡 부러뜨리며 바람구멍을 확인하는 엿치기도 재미있다.
다음으로 인기 있는 체험은 딸기 따기이다. 딸기 하우스 안은 이미 따스한 봄날, 딸기 따기는 농장주의 시범에 따라 꽃이나 줄기가 상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따는 재미, 담는 재미, 먹는 재미까지 어른 아이 모두가 즐겁다.
마을에는 14채의 한옥과 2채의 일반 농가가 민박을 운영한다. 내부에 주방과 욕실을 갖춰 편리하다. 가격은 방 1칸 5만원부터 1채 20만원까지. www.gaesil.net 054-956-4022.
마을에서 차로 3분 거리의 미니멀동물원은 동물과 직접 교감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다. 고령과 가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가 마을에서 8km 떨어져 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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