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취방’을 주제로 하여 여성을 대상화한 화보집의 크라우드 펀딩이 문제가 되면서, SNS에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라는 해시태그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깨끗하고 예쁘게 꾸며 놓은 여성의 자취방’이라는 판타지를 깨는 일상의 사진들이 중심이었지만, 결국 한국에서 여성이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고충과 공포를 토로하는 장이 되었다. ‘자취하는 여자’와 ‘잘 취하는 여자’를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유머로 소비되고, 비슷한 광고 문구가 등장하기도 하는 사회에서 누군가 여성과 자취방을 엮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한국 여성들은 현실의 공포를 공유하고 있었고 그 이야기는 사실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슷한 것이었다.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를 보고 나는 20대 후반에 4년간 머물렀던 서울 강서구의 옥탑방을 떠올렸다. 한 남자가 집 앞까지 따라와 번호를 달라고 했을 때 휴대폰이 꺼졌다고 거짓말하고 지어낸 번호를 알려 준 뒤 일주일 넘게 누가 쫓아올까 걱정하며 숨어 다녔던 기억, 자동차가 바짝 옆으로 따라붙는다는 느낌에 도로를 가로질러 도망치듯 뛰었던 밤, ‘너희 동네에 여성 납치 범죄가 잦다는 뉴스가 나왔다’는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이 모두 생생했다. 아마도 혼자 살아 본 여성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여성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자취방 일화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소설은 1982년 여성 출생자 중 가장 많은 이름이라는 ‘지영’에 가장 흔한 성 ‘김’을 붙여, 2017년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이 된 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첫 장을 넘어 1982년의 탄생부터 읽어 나가면, 그게 바로 현재 2030세대 여성들의 일대기가 된다. 작가는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 ‘OECD 성별 임금 격차’ 등 실제 통계와 자료, 기사를 적극적으로 인용하여 82년생 김지영씨의 삶이 얼마나 보편에 가까운 것인지를 보여 준다. 김지영씨를 포함해 탄생부터 여아 낙태의 생존자였던 여성들은 거의 모든 생애 관문에서 차별과 희생을 경험한다.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김지영씨의 삶에 전부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을 겹쳐 놓을 수밖에 없다. 마치 여성으로 자취방에 살며 겪는 공포가 하나이듯,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비슷한 경험인 것이다.

나는 1983년생이고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딸인 것에 실망하지 않았지만, 그건 이미 오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크고 나서기 좋아하던 내게 주위 사람들은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일을 했을 것”이라고도, “여자애가 기가 세서 문제”라고도 했다. 고등학교 전교 회장 선거 때는 함께 출마한 남학생이 나더러 유세가 요란스럽다며 “저러다 불리하면 옷이라도 벗겠지”라고 말했다. 대학 때는 MT 때 친구 옆에서 술에 취해 내내 치근덕대는 선배를 제지했다가, 다음 날 그의 친구에게 “이 사건으로 대자보 쓰지 말라”는 위협을 들었다. 3년간 준비했던 취업 시험에는 결국 합격하지 못했는데, 내가 지망했던 직종이 여성을 거의 뽑지 않아서인지 그냥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서른이 넘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1년 다녀온 나를 두고, 누군가 어머니에게 “남자들은 외국물 먹은 여자를 싫어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 김지영씨와는 같고도 다른 ‘83년생 윤이나’의 이야기다. 이제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로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차별과 공포, 희생의 기억을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함께 다짐하고 싶다. 자, 이제 당신이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