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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중단 1년… 문 닫거나 동남아로 떠밀려간 공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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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중단 1년… 문 닫거나 동남아로 떠밀려간 공장들

입력
2017.02.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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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 100% 묶인 입주사 51곳 중

32곳은 베트남 등으로 공장 이전

11곳 생산 중단, 8곳 재하도급 연명

개성공단 폐쇄 1년(2월 10일)을 앞둔 6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 일대가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개성공단 폐쇄 1년(2월 10일)을 앞둔 6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 일대가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개성공단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잊혀진 곳이다. 앞으로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회사를 정리하고 싶어도 정부 지원 대출금을 갚지 못해 폐업도 못한다. 빚 이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데 언제까지 버틸 지 모르겠다.”(개성공단 입주기업 J사 대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집에 와 밀린 월급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개성공단이 뭔지도 모르는 하청업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개성공단 입주기업 협력업체 B사 대표)

개성공단 전면중단 사태가 1년을 맞았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고통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입주기업에 원자재 등을 납품했던 5,000여 개의 협력업체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거 도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한국일보가 7일 개성공단기업협회와 공동으로 전수 조사한‘2017년 피해기업 실태현황’에 따르면 입주기업 124곳 중 회사 생산시설 100%를 개성에 둔 기업은 51곳에 달했다. 이중 32개 기업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후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공장을 옮겨 생산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11개 기업은 아직 1년째 공장 가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8곳은 개성공단 공장 폐쇄로 일감 처리가 어려워 다른 중소업체에‘재하도급’방식으로 자금난 해소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활동을 재개하지 못한 기업들은 이름만 남은 유령업체와 다름이 없었다. 공장 가동을 못하면서 영업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직원들 급여도 못 줘 직원 대다수가 이미 회사를 떠난 상태였다. 이런 탓에 일부 기업들은 회사 청산 절차를 밟으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회사를 청산하려면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데, 자금 마련을 못해 사면초가의 입장이었다. 개성에 생산 시설이 일부 남아있는 현진정밀공업사 정지태 대표는 “정부는 개성에 묶인 수십억원 대의 회사 자산을 단돈 몇 천 만원으로 보상해 주겠다는데 이는 그냥 우리에게 망하라는 소리”라며 “지난해 가을 직원들을 다 내보냈지만, 대출금 갚을 능력이 안돼 회사 정리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한 32개 기업들도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업체는 현지에 공장을 짓기 위해 금융권으로부터 대부분 추가 대출을 받았다. 그래도 부족한 자금은 현지 투자자들과 공장 지분을 나누는 합작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투자 비용이 큰 탓에 공장 가동만으론 단기간에 흑자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개성공단보다 인건ㆍ생산비도 높은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해온 최동진 디엠에프 대표는“베트남 공장을 돌려 흑자를 내는데 앞으로 최소 2~3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흑자를 내더라고 그 규모가 작아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기는 불가능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생산시설이 개성공단에 일부 남아 있는 나머지 75개 기업은 국내외 다른 생산시설을 최대한 가동해 개성공단 물량을 채워가는 급급한 상황이다. 이중 28곳은 개성공단 물량을 재하도급 방식으로 돌려 막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협회 관계자는 “개성공단 생산 비중이 70% 이상인 73곳의 기업은 다른 공장을 가동해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며 “입주기업 절반 이상이 지난 1년 동안 매출 감소를 겪었고, 기업들 부채는 갈수록 늘어가는 악성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1년 정도 장기화하면서 입주기업에 원부자재를 납품해온 5,000여 개의 협력업체들은 연쇄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 협력사는 사태의 조기 해결을 기대하며 금융권 대출과 다른 기업에 납품한 물품 대금을 받아 근근이 버텨왔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부도를 맞은 협력사 ‘사장님’ 중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 일용직이나 대리운전 등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람도 부지기수다. 개성공단입주기업에 골판지상자를 납품해온 D사 이영우 대표는 “원청업체가 납품대금 결제를 미루면서 수개월째 종업원 15명의 급여를 한 푼도 못 주고 있다”며 “이대로 더 가면 회사는 도산을 피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공단 가동 중단으로 기업들의 피해규모는 현재 1조 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 업체들은 지금까지 정부의 실질적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분개하고 있다. ‘설마 설마’하며 정부의 피해 보상조치를 손꼽아 기다려온 이들 기업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김서진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상무는 “정부가 경영정상화 명목으로 지원한 금액은 전체 피해액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무이자 대출 성격의 지원이라 사실상 지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주인 신한용 신한물산 대표도 “실질적 피해 보상이 이뤄져야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며“그래야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해도 기업들에게 설득력있게 재 입주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중단 사태 장기화로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자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아닌 정부의 조치로 개성공단이 중단된 만큼 대출 등의 지원이 아닌 실질적 피해 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명섭 통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정부의 통치행위로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만큼 그에 따른 기업들의 손실을 보장해 주는 것이 사유재산 보호를 규정한 헌법에 따른 정부의 의무”라며 “보상을 위한 입법마련이 돼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즉시 입법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바탕으로 기업들을 지원해준 만큼 별도의 특별법 제정은 불필요 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상민 통일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은 “이미 현행법을 통한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에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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