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50마리 이상이면 자체 백신 접종해야
고령 축산농 애로“수의사가 일괄 접종을”
이번 구제역이 백신접종 소홀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축산 농가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농가에서는 “방역시스템의 허점은 놔두고 농민들만 탓한다”고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올해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충북 보은군 마로면의 축산농 A씨는 방역당국의 조사에서 “군청에서 시키는 대로 제 때 예방접종을 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A씨 농장의 젖소 21마리를 표본 조사한 결과 4마리(19%)에서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 충북지역 소의 평균 항체형성률 97.8%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충북도는 일단 평균치보다는 현저히 낮지만 일정 수준의 항체형성률이 나온 만큼 이 농장에서 백신 접종은 이뤄진 것으로 보고 백신 관리나 접종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역학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냉장 보관해야 하는 구제역 백신을 상온에 뒀다거나 정량을 제대로 주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농가가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축산농들의 생각은 달랐다. 구제역 백신 예방접종 책임을 농가에 맡겨놓는 바람에 애초부터 철저하고 안전한 방역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농림부의 현행 가축방역 실시요령에 따르면 소 50마리 미만의 소규모 농가는 공인 수의사가 백신 접종을 대신해주지만, 50마리 이상은 농가가 스스로 백신 주사를 놓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일부 고령의 축산농은 주사 작업에 큰 애를 먹고 있다.
젖소 80여 마리를 키우는 김모(72)씨는 “돌아다니는 큰 짐승을 한데 몰아놓고 한 마리 한 마리 주사를 놓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며 “전문가인 수의사가 일괄적으로 접종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젖소가 주사를 맞으면 산유량이 떨어지는 만큼 솔직히 주사투약 전에 고민을 하기도 한다”며 “공인 수의사를 통해 정부가 백신접종 과정에 관여해야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예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항체형성률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많았다. 항체형성률 표본 조사가 대부분 도축 직전에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 축산 현장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주장이다. 또 사육되는 소의 5.7%만을 뽑아 항체형성률을 조사하다 보니 정확도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물백신’의혹도 제기했다. 축산농 B씨는 “2012년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 당시 일부 수입 백신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기존의 백신이 잘 듣지 않는 변종 바이러스라면 더 많은 농장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농가들이 더 철저하게 방역 매뉴얼을 따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소 300마리를 키우는 김남용(61)씨는 “이제 구제역이 항시 발생하는 가축전염병이 된 만큼 농가 스스로 방역일지를 만들어 완벽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매뉴얼대로 백신을 제 때 주사하고 소독을 철저히 하면 구제역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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