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2.8
1996년 2월 1일 미국 의회가 통신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통신산업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이었다. 거기에 TV 등 방송 수신장비 업체가 제품 제조단계에서부터 폭력ㆍ외설물을 차단하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고 인터넷 통신망 사업자는 음란ㆍ외설물 게시를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삽입됐다. 상ㆍ하원은 1935년 제정된 통신법을 61년 만에 대체하게 된 법안을 압도적 표차로 가결했다. 빌 클린턴은 2월 8일 개정 법안에 서명했다.
그날, 인터넷 자유주의자 그룹인 ‘전자프런티어재단(EFF)’홈페이지에는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A Cyberspace Independence Declaration)’이라는 자극적 제목의 글 한 편이 올라왔다. EFF 공동창립자중 한 명인 미국의 시인ㆍ활동가 존 페리 발로(John Perry Barlow, 1947~)가 쓴 그 글은, 개정 통신법 반대를 넘어 사이버 무정부주의 선언을 방불케 했다.
“산업세계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 나는 마음의 새 고향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너희는 환영 받지 못한다. 네게는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로 시작하는 선언문은, 정부와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며 ‘너희’의 법률보다 훨씬 질서정연한 “우리의 문화와 윤리와 불문법”을, “우리 자신의 사회 계약을” 자랑한다. 그 사회는 “인종과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며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는” 사회다.
발로는 통신개혁법안이 미국 헌법 정신을 모독하고, 제퍼슨과 워싱턴, 토크빌의 꿈을 욕보였다며 “우리의 사이버 스페이스는(…) 너희 정부가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디지털 정보 교류의 무한 자유라는 발로의 꿈은 자본의 탐욕이 스미고 넘쳐 이미 큰 물길로 안팎을 휘감고 도는 이 시대의 가장 과격한 몽상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저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자본과 구시대권력 탓으로만 돌리기도 힘들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모든 꿈처럼, 발로의 선언문도 처연히 아름답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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