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수 시절 예(Yes)와 아니오(No)를 헷갈려 사고를 친 적이 있다. 영어의 부정의문문이 문제였다. 새로운 아파트 매니저가 부임했을 때다. 관리사무소에서 월세를 내고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평소 친했던 관리사무소 직원이 “Don’t you believe me?” 라며 농담을 건넸다. 새 매니저에게 주민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이려 한 것이다. 무심코 ‘그게 아니고 영수증이 필요해서’라는 의미로 “No. I …”라고 말하고는 아차 싶었다. 큰 실수였지만 우리말 습관을 이해시키기에는 상황이 복잡했다. 그 직원은 며칠이 지나 해고됐다.
▦ 옥황상제가 영어로 “천당이 싫은가?”라고 물었는데 “No. I …”라는 식으로 답했다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한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Thank you, @Samsung”도 반응하기가 대략 난감하다. 삼성이 미국에 가전 공장을 건설할 것 같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트럼프가 날린 트위터 내용이다. “You’re welcome”이라고 답하면 쉽겠지만, 아직 공장 건설을 할 의지가 있거나 계획이 확정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그 계획이 없다고 부인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묵묵부답이다.
▦ 일본의 심리학자 나이토 요시히토의 책 ‘협상의 기술’에 “예스 화법으로 거절하기 힘든 심리를 조성하라. ‘네’라는 대답이 나올 질문을 연달아 던지면 결국 ‘아니요’라고 하기 힘들게 된다”는 협상 기법이 나온다.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인물로 같은 제목의 베스트셀러 저서도 있다. 그는 책에서 "이기기 위해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고 했다. 책의 대필가인 토니 슈워츠는 트럼프에 실망해 “인세가 피 묻은 돈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며 인세를 국립이민법 센터에 기부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동원해 보호를 명목으로 기업의 팔을 비트는 것은 조폭의 행태, 트럼프가 외국 기업까지 압박해 미국 내에 일자리를 만들라고 하는 것은 내 구역에서 물건 팔아먹으니 자릿세(일자리 창출) 내라는 마피아의 행태와 유사하다. 국가 대 국가, 정상 대 정상이 아닌 일개 기업을 대상으로 압박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 로버트 누킨은 책 ‘하버드 협상의 기술’에서 골치 아픈 상황에 빠뜨리는 협상 상대를 ‘악마’로 지칭하지만, 필요하다면 악마와도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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