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샌프란시스코 제9 연방항소법원의 움직임에 전 세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법정 중 하나인 이 법원이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 유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 CNN과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제9 연방항소법원은 미 서부 시간으로 7일 오후 3시 행정명령 사건의 구두 변론을 청취한다. 행정명령의 즉각적인 효력 부활을 요구하는 법무부와 이에 맞서 집행정지 유지를 주장하는 워싱턴ㆍ미네소타 주가 각각 30분간 변론에 나선다. 양측 모두 전화로 변론을 펼치게 되는데, 진행 상황은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실시간 중계된다.
법무부는 행정명령이 대통령의 합법적인 권한 행사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하급 법원이 ‘7개 이슬람국 입국자 전원’에 대해 행정 명령 효력을 정지시킨 것은 지나치게 광범위한 조치라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입국 전력이 있는 여행객을 구제하는 것까지는 양보할 수 있지만, 한 번도 미국 땅을 밟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도 입국을 허용하는 건 지나치다는 논리다. 법무부는 “원천적으로 미국 영토 밖의 외국인은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따질 위치에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민법 전문가를 인용, “미국 대통령은 위험 인물의 입국을 거부할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행정명령 반대 진영이 대통령의 이런 권한을 성공적으로 부인하려면 심각한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행정명령 반대 진영은 법리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후원 세력이 힘이다. 워싱턴ㆍ미네소타 주에 이어 다른 14개 주 법무장관들도 행정명령 효력 정지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항소법원에 제출했다. 이들은 행정명령 시행이 해당 지역의 대학 사회ㆍ의료계 등을 포함해 지역 경제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민주당 정권의 고위 관료와 유수의 정보기술(IT)업체, 학계,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존 케리 전 국무장관,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이 ‘효력 정지’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들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해치고 전장의 미군들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IT기업 중에는 애플, 이베이, 페이스북,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120개 기업이 포함됐다.
항소법원은 원칙적으로는 변론을 청취한 직후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 언론도 판결 방향을 예단하는 대신, 이번 항고심리를 맡은 윌리엄 캔비 판사(카터 대통령 임명), 리차드 클리프톤 판사(조지 W. 부시), 미셸 타린 프리드랜드(오바마)판사 등 3명의 성향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총 25명의 소속 판사 중 18명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에 의해 지명됐으며 총기 소유권 위헌결정 등 과거 여러 진보적인 판결로 미국을 들썩였던 법원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신속하게 들어주기보다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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