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씩 빠르게 뽑으려면 추워도 맨손이나 목장갑
불경기 탓 불법 알면서도 퇴폐업소 전단 유혹에
6일 낮 12시 점심시간. 해가 중천인데도 기온은 0도 밑이다. 삭풍 탓에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서있기만 해도 삭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사람들이 종종 걷는다. 서울 강남역 먹자골목 구석구석에 전단을 나눠주는 60대 이상 여성 20여명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부근에서 5년째 전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장모(65)씨는 “환갑 넘어 할 수 있는 게 없다. 바깥 양반도 세상 떠나 기초노령연금이 월 20만원도 안 된다”고 했다. “특별한 기술 없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나온 사람들이다. “전단대행업체에 전화 한 통이면 일감을 준다”고 했다. 장당 20원, 하루 벌이는 최대 2만원(1,000장) 안팎이다. 그것도 날씨를 주재하는 하늘이 도와야 한다.
그래서 겨울은 내내 추위가 애물단지다. 온몸을 꽁꽁 싸매도 모자랄 판에 가죽장갑은 사치다. 전단을 1장씩 빠르게 뽑아 건네기 위해 맨손이거나 작업용 목장갑을 낀다. 추위는 무관심의 강도도 높인다. 이모(71)씨는 “다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어서 전단 나눠주기가 다른 계절보다 2배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호객행위를 섞어야 그나마 나눠줄 수 있다. “여기 싸고 맛있어요” “새로 열었는데 한 번 맛보고 가요” 등 전단 좀 받아가라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날 점심시간 종각역 인근에서 음식점 전단을 나눠주던 박모(66)씨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다들 주머니에서 잠깐이라도 손을 빼주지 않겠느냐”고 걸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추운 날 오래 서있고 움츠리고 있다 보니 목 허리 다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60세에 시작해 올해로 전단 아르바이트만 10년째인 박모(69)씨는 “이걸로 삼시세끼 먹으니 추워도 나올 수밖에 없다”라면서도 “이 일 때문에 목 디스크 수술 4번, 허리 디스크 수술도 4번했다”고 했다. 수술비는 자식들한테 손을 벌렸다.
추위는 벌이도 앗아간다. 신림역 먹자골목에 매일 나오는 김모(67)씨는 “요새같이 추운 날씨에는 저녁에는 나오기 힘들고, 점심에 500장 들고 나와도 100장 정도 나눠주는 게 다인 날도 있다”고 한숨지었다. 김씨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나눠준 전단은 95장. 두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받아가는 돈은 고작 1,900원, 시간당 950원을 번 셈이다. 2017년 최저임금(6,470원)의 7분의 1 수준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전단 여성들은 겨울이 되면 불법을 건네기도 한다. 성매매나 퇴폐업소를 광고하는 불법 전단은 일반 전단보다 2~3배 더 쳐준다. 최근 불경기에 자영업자들이 전단 홍보를 줄이는 바람에 불법의 유혹은 더 강렬해지고 있다. 불법 전단을 배포하면 경범죄처벌법 3조 위반으로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지만 가릴 처지가 못 된다. 저녁이면 종각 먹자골목에서 퇴폐업소 전단을 나눠주는 유모(69)씨는 “다른 계절에 버는 만큼 벌려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무심코 지나치는 전단 할머니들. 그들이 건네는 별 시답지 않은 종이 쪼가리를 받는 일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끼, 불법을 줄이는 작은 실천이 될 수도 있다.
글·사진=이상무 기자 allclear@ha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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