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효력이 하급 법원의 저지로 정지되면서, 최고 재판소인 연방 대법원의 공석 대법관 지명 작업의 정치적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의 보수ㆍ진보 성향 법관 비율이 4대4 동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대법관으로 지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콜로라도 주 연방항소법원 판사의 입성 여부가 트럼프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 셈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에 이어 미 법무부가 항고를 제기한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제9 연방항소법원도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 정지를 최종적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행정명령 효력을 회복시켜달라는 법무부 긴급요청을 기각했던 제9 연방항소법원은 6일부터 법무부 항고에 대한 심리를 시작해 이르면 1주일 안에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법원에서도 반이민 행정명령이 회생되지 않을 경우 대법원에서 역전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고서치 판사의 조속한 인준이 절실하다. 대법관들은 원칙상으로는 개별ㆍ독립적으로 판단하지만, 인권ㆍ안보 등의 이슈에서는 뚜렷하게 보수ㆍ진보 성향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고서치 지명자가 합류하지 못해 8인 체제에서 4대4 동수 결정이 나온다면, 하급심이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가 없게 된다. 반대로 고서치 지명자가 행정명령 위헌 결정에 동참한다면 5대4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열릴 미 상원의 고서치 지명자에 대한 인준 절차에 대해 민주당과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사활을 걸고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까지 동원해 저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상원 의석분포는 총 100석 중 공화당이 52석을 차지해 과반이지만, 필리버스터를 저지하려면 의원 6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에 나서면 고서치 지명자 인준은 무기한 지연될 수밖에 없다.
미치 매코널(켄터키)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는 필리버스터에 부정적인 일부 민주당 의원의 도움을 얻어 인준 절차를 정상적으로 신속하게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마음 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핵 옵션’(nuclear option)을 동원해 의결정족수를 ‘찬성 60표’에서 ‘단순 과반’(51표)으로 낮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 언론에서는 매코널 대표가 ‘핵 옵션’에 부정적이면서도 고서치 지명자 인준 통과를 장담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의 반대로 정상 처리가 어려워진다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트럼프 대통령 제안을 수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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