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영사관ㆍ교민단체 긴장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자국에서 암약하고 있는 한국인 폭력조직에 선전포고를 내렸다. 외국인인 이들을 사살할 수도 있으며, 한국인 관광객에 대해서도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여느 범죄자들과 똑같이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작년 6월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7,000명 이상의 마약사범이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사살됐다.
6일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4일 남부 다바오시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폭력조직이 세부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들이 마약, 매춘, 납치에 관여하고 있다는 보고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며 “법을 준수하는 한국인들은 보호받고 내국인들과 평등하게 대우받겠지만 불법행위를 하는 한국 관광객은 내국인 범죄자들과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이 지난해 10월 납치ㆍ살해된 한국인 사업가 지모씨 사건에 한국 조폭 연루 가능성을 제기한 데 이어 나온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4일 필리핀 언론은 델라로사 청장이 “한국 범죄조직들이 필리핀에서 경쟁하고 있다”며 “아직 이들이 (작년 10월 사건에) 연루됐는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세부에 가서 조금만 취재를 해도 알게 될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국내 수사 당국도 국내 조폭들의 현지 활동을 감지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불법도박에 대한 단속이 심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조폭들이 필리핀과 마카오 일대에 진출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검 관계자는 “인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필리핀에서 국내 조폭 15개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치안 총책임자가 자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조직들의 불법행위 가능성을 제기한 데 이어 대통령이 이들의 불법행위를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만큼 필리핀 당국에 의한 한국인 피해 발생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게 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알려짐에 따라 현지 영사관 및 교민단체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의 한 한인 사업가는 “아주 틀렸다고는 볼 수 없지만 과한 느낌이 있다”면서도 “일단은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한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세부총영사관 관계자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의 근거에 대해 확인을 하고 있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필리핀 정부가 명확한 근거를 갖고 지원 요청하면 수사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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