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LGBTQ’ 커뮤니티를 포함해 성소수자의 권리를 계속 존중하고 지지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LGBTQ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동성애자(Queer) 등 성소수자를 일컫는 용어. 그러면서 2014년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마련된 직장 내 LGBTQ 차별을 금지한 행정명령도 존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첫 주 반이민 정책 등 14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거침없이 ‘오바마 지우기’에 나섰던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치곤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는 취임 직후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LGBT 관련 코너를 삭제했고, 정부가 성소수자의 공무원 임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행정명령 초안 작성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온 터였다. 특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인디애나 주지사 시절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사업주가 고객 요구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한 ‘종교자유회복 법안’을 통과시킨, 대표적 동성애 반대 인사였다.
그러나 이날 나온 성명 내용은 딴판이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4일 그 이유를 트럼프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부부의 반발 때문으로 꼽았다. 오랫동안 민주당원이었던 쿠슈너와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며 성소수자 운동을 지지해 온 이방카 부부가 거부해 행정명령 서명을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부부는 단순히 우려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트럼프와 만나 의지를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이들 의견에 힘을 보탰다. 골드만삭스 사장을 지낸 그는 경제ㆍ사회정책에서 각각 보수와 진보적 관점이 공존하는 월가 파워맨의 습성을 보여준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다만 트럼프의 성소수자 보호 조치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대선 기간 트럼프를 지지한 보수주의 단체들은 이번 성명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보수주의 활동가 밥 밴더 플라츠 “우리는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그가 왜 오바마의 유산을 유지하려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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