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발 항공기 도착 공항
무슬림 승객 입국장 나올 땐
“환영” 곳곳서 시위대 함성
美 법원 결정 제대로 전달 안 돼
테헤란 공항 등서 탑승 좌절
가족 생이별 사태도 계속
트럼프, 주말 휴가지서 트위터
“결정 내린 판산 의견 터무니 없어
나쁜 의도 가진 사람 입국할 수도”
4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보스턴 로건공항 입국장에 이란발 항공기로 도착한 승객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제이납 하쉐미안(4)은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를 한눈에 알아보고 면세구역 쪽으로 달려갔다. 어린딸과 함께 어머니를 기다리던 제이납 부부는 ‘손녀가 할머니를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쓴 푯말을 떨어뜨리고 할머니와 딸의 포옹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만삭의 몸으로 입국장 출구를 지켜보던 아지 토카마니는 한차례 미국 입국이 좌절된 후 구금됐던 어머니가 나타나길 눈물을 머금은 채 기다렸다. 그는 숨을 참으며 “어머니가 오고 있어요. 기뻐서 참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미국 법원의 결정으로 이슬람 7개국 여행자 입국이 4일부터 재개되자 미 전역 공항에선 내내 감격스러운 이슬람 국가 출신 가족들의 상봉이 목격됐다. 하지만 온전한 기쁨은 아니었다. ‘정의가 살아났다’고 외치며 공항마다 입국자들을 환영하는 미국 시민들이 인파를 이루고 곳곳에서 가족의 기쁜 함성이 들렸지만 미국 실무부서가 법원 명령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져 가족이 생이별하는 등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졌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반 무슬림 정서’를 자극하는 트위터를 쏟아내고 법무부는 행정명령 부활을 위해 법적 다툼까지 나서, 혼란은 좀체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5일 미국 언론에 따르면 연방법원 결정으로 ‘반이민 행정명령’효력이 정지되고 전날부터 이슬람 7개국 여행객 입국이 재개된 데 이어, 이날에는 전날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미국 전역 공항으로 입국했다. 공항 입국장에 진을 쳤던 ‘행정명령 비난’시위는 ‘입국자 환영 시위’로 바뀌었다. 수도 워싱턴 인근의 덜레스, 시카고 오헤어, 보스턴의 로건 국제공항 등에서는 입국장 밖으로 무슬림 여행객이 걸어 나올 때마다 큰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위대에는 입국 거부자들에게 무료 자문을 하려고 대기 중이던 변호사들도 섞여 있었다.
이슬람 7개국 입국 희망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조직화하고 있다. 재능 기부 변호사들은 공항 구내에 법률 지원 코너를 마련, 입국자들의 제보 혹은 도움 요청을 통해 트럼프 정권이 법원 결정을 성실히 이행하는지 점검했다. 최근 트럼프 정권의 경제 자문단에서 사퇴한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최고경영자(CEO)는 고향에서 발이 묶인 일부 직원을 위해 비행기표를 대거 구입 중이라고 밝혔다. ‘국제난민지원 프로젝트’의 베카 헬러 대표도 “언제 다시 입국 금지가 시행될지 모른다”며 “입국이 거부됐던 이슬람 여행자들은 가급적 빨리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의 결정이 해당 7개국에 제대도 전달되지 않으면서 가족이 생이별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보스턴 로건공항으로 입국한 이란 출신 자릴리 가족 4명의 사연이 대표적이다. 이 가족의 가장인 하미드 자릴리는 미국 법원의 조치로 테헤란 공항에서 미국 행 비행기에 올랐으나, 막판 큰딸(헬랴 자릴리)의 탑승이 좌절됐다. 자릴리씨는 “당국자가 이유를 대지 않고 다른 15명과 함께 19세 큰딸의 탑승을 막았다”고 말했다. “10년 전부터 준비한 미국 이민을 위해 이미 모든 재산을 처분했고, 큰 딸이 ‘걱정 말고 어서 떠나라’고 성화하는 통에 비행기에 탔다”면서도 “딸을 만나지 못하게 될 까봐 걱정”이라고 울먹였다.
아프리카 지역의 항공 허브인 지부티 공항에서도 여전히 입국금지 조치가 풀리지 않고 있다. 현지 변호사들이 지부티 공항에 갇힌 예멘 여행객의 비행편을 알아보고 있으나, 카타르 항공과 터키 항공은 7개국 출신은 여전히 탑승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4일부터 탑승을 허용한 독일 루프트한자와 에미레이트 항공도 “미국 이민 규정에 따라 언제든 예고 없이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며 여행객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휴가지에서 트위터를 통해 법원 결정에 극도의 분노를 표출했다. “미국의 법 집행력을 빼앗아 간 소위 판사라는 자의 의견은 터무니없으며 곧 뒤집힐 것”이라며 행정명령 이행 중단 명령을 내린 제임스 로바트 판사에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또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까지 미국에 들어올 수 있을 때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닥치겠느냐”고 공격했다.
한편 ‘반 이민 행정명령’과 이를 뒤집는 법원 결정에 대해 미국 여론은 거의 정확히 반쪽으로 나뉘었다. 이날 CBS방송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 45%, 반대 51%로 엇갈린 여론조사를 인용, “미국이 정치적 노선에 따라 극명하게 쪼개졌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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