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법원, 반이민 행정명령 중지 결정
트럼프 정부 항고도 기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일방주의’ 행보가 취임 2주일 만에 법원에 의해 첫 제동이 걸렸다. 이슬람 7개국에 대한 ‘반(反) 이민 행정명령’집행이 워싱턴 주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의 결정에 따라 4일부터 미 전역에서 금지됐다. 인종ㆍ종교 차별을 이유로 반대해 온 미국 시민과 세계 여론은 ‘법원에 의한 정의 회복’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망가뜨린 민주주의와 이민자 정신 등 미국적 가치를 사법부가 나서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연방지법 결정에 대해 즉각 항고했으나 항소법원은 이를 기각해 상급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행정명령 효력은 중단된다. 법적 공방 결과에 따라 행정명령의 부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미국사회의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미 국무부와 국토안보부는 4일(현지시간) 이란, 이라크 등 이슬람 7개국 여행자의 입국을 잠정적으로 금지한 대통령 행정명령을 이날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 시애틀 연방지법 제임스 로바트 판사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워싱턴 주가 지난달 30일 제기한 행정명령 중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로바트 판사는 “워싱턴 주가 현재 벌어지는 (행정명령 반대) 집회로 부담을 느끼고 있고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며 신청을 받아들였다. 또 “행정명령의 효력을 미국 전역에서 잠정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미 사법체계상 판사 결정은 대통령 행정명령에 우선한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부와 국토안보부도 즉각 행정명령 이행을 중단했다. 국무부는 행정명령으로 취소됐던 6만개 비자의 효력이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도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행정명령에 따라 취해진 모든 조치, 특히 특정 여행자를 거부한 운송규칙을 유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주요 항공사들도 미국 행 비행기에 7개국 국적자들의 탑승을 재개, 4일 오후부터 비자가 취소됐던 이들의 미국 입국이 이뤄졌다.
법무부가 시애틀 지법의 결정을 무효로 해달라는 항고장을 상급법원(연방 항소법원)에 제출했으나 5일 오전 캘리포니아 주 샌프시스코 소재 미 연방 항소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대신 법무부의 주장을 6일까지 법원에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시애틀 지법의 행정명령 중단 결정은 상급법원의 추가 판단이 있을 때까지 효력이 유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저녁 휴가지인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수행 기자들에게 “미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소송에서) 이길 것”라고 강력한 법정 다툼을 예고했다. 그는 트위터에도 “(법원 결정으로) 아주 위험하고 나쁜 무리들이 우리 나라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미 언론은 행정명령의 최종적 운명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시민 중 절반 가량은 대 테러대응 및 치안유지를 위해 행정명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8인 체제인 미 대법원은 보수 대 진보 비중이 4대4인 상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닐 고서치 대법관 지명자가 의회 인준을 신속하게 통과한다면 5대4 구도로 행정명령의 부활 가능성도 예상된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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