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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간과 고통과 용기

입력
2017.02.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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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제약이자 가능성이다. 시간은 우리가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고, 목소리를 떨게 만들고, 절망 속에 악셀레이터를 밟게 한다. 반대로 시간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빈 공간 속에 우리를 옮겨다 놓기도 하며, 창조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도도히 흐르는 시간은 우리를 다시 모이게 만들기도, 혹은 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금 공유하고 있는 시간의 흐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이 시간대는 큰 틀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청산의 시간인가, 아니면 뒤로 돌아가는 복고의 계기인 것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불안과 혼란의 시간인가.

작년 가을에 시작된 촛불집회는, 해를 넘어 겨울이 가고 있는 지금도 끝나지 못하였다. ‘끝나지 않았다가 아니라 끝나지 못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직무정지 상태의 권력이 역전을 도모하고 있는 탓이다. 구체제로의 끈질긴 복귀 시도는 권력 지키기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들의 끈질긴 추진에서도 보여진다. 교육부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국정교과서를 관철시키고 있고, 저임금과 불안정고용을 종용하는 노동정책, 부정수급 골라내기에 집중하는 복지정책 등 집권당의 정책 방향은 별다른 변화 조짐이 없다. 이런 고집에 세월호 사건이나 AI 대응에서 보여진 무능함이 더해진다.

이 시대를 특징짓는 한 가지는 위임권력과 기존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가 현격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출 권력에 대한 저항은 동료 시민들과의 연대, 직접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기존 제도로 담을 수 없는 불만이나 열정은 유례없는 장기간의 대규모 저항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예상 밖 인물의 대통령 당선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를 혼란의 시대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수 동시대인들의 선택이 시대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신자유주의 시대 성장이란 명분으로 미화시킨 정책들은 분명 소수의 손에 부를 집중시켰다. 그렇다고 대중의 선택에 항상 찬사를 보내는 것도 성급하다. 모호함을 견뎌내고 대중이 원하는 새로운 시대를 해석하여 이를 분명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호함 대신 난국을 성급하게 돌파하고자 한 것이 최근 미국의 행보가 아닌가 싶다. 미국의 새 대통령은 정치적 유용성이 있다면 극단의 대결도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미래를 향한 재건 이전에 모호함을 견디는 시간, 인내와 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례로 혁명적 복지제도 구축의 필요성은 조금도 줄지 않았지만,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기반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은 더욱 절실해졌다. 더욱이 대중의 열정과 의지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정치제도 재구성은 단기에 완성될 수 없다.

오히려 빨리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염려스럽다. 속도에 몰입해서 망각을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가올 선거가 미래와 희망만을 이야기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 우리가 헤쳐나가고 있는 이 시간은 수십 년 간 한 사람 한 사람이 견뎌야 했던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대선주자들이 통합, 미래, 정의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지배 엘리트의 세습권력과 이에 부응한 정치, 경제가 가져온 만연한 고통을 충분히 직시하였기를 바란다.

신영복 선생은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이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라고 하였다. 경쟁 속에서 도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망각을 재촉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고통을 직시하는 용기가 아닌가 싶다. 시간은 망각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시간을 깊이 호흡하며 그 속에 깊이 들어갔다 나올 때 우리는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된다.

2017년이 부당해고로 노숙농성을 하는 이들의 차가운 잠을 따듯한 잠으로 바꾸고, 생활고와 과로로 위태한 목숨을 안전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단절의 시간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를 위해 성급한 타협보다는, 두려움과 모호함을 견디고 고통을 직시하게 만드는 용기가 절실하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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