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는 말은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의 맏언니 임영희(37)에게 딱 들어맞는다. 2012~13시즌 만년 하위 팀 우리은행을 정상에 올려놓고 데뷔 14년 만에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라는 영예를 처음 누렸다.
늦게 피었지만 가장 크고 화려하게 핀 임영희는 우리은행이 올해까지 5시즌 연속 정규리그 정상을 지키는데 중심에 있었다. 위성우(46) 우리은행 감독은 임영희를 ‘고목’에 비유하면서 “항상 팀을 지켜주는 존재로 선수단 전체가 (임)영희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고 설명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전주원(45) 코치 역시 “내가 영희 나이에 선수로 뛸 때보다 더 체력도 좋고 부지런하다”고 칭찬했다.
임영희는 지난 2일 서울 장위동의 구단 숙소체육관에서 진행된 본보와 인터뷰에서 “감독님은 나이가 많다고 대충 뛰어다니는 걸 용납 못하는 분”이라며 “내 몸도 5년째 하는 (운동량이 많은) 우리 농구에 적응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훈련할 때는 체력적인 부분을 잘 조절해주기 때문에 경기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자는 생각으로 뛰고 있다”고 덧붙였다.
24승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최소 경기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한 우리은행에서 MVP를 두고 ‘집안 싸움’이 펼쳐진다. 후보는 임영희와 박혜진(27)으로 압축된다. 임영희는 4일 현재 정규리그에서 평균 13.4점 3.8어시스트 2.9리바운드를 기록 중이다. 3점슛 성공률은 34.7%다. 임영희가 이번 시즌 MVP에 오르면 2009~10시즌 신한은행에서 뛰었던 정선민 코치의 36세 기록을 넘어 여자농구 역대 최고령 MVP에 이름을 올린다.
박혜진은 정규리그 평균 13.4점 5.2어시스트 6리바운드 1.5스틸로 다방면에서 활약을 했다. 3점슛 성공률은 36.3%다. 수치상으로는 박혜진에게 무게가 실리지만 위 감독은 ‘둘 중 한 명이 받아야 한다면 누구를 추천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혜진이가 서운해 할 수도 있지만 영희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며 “그 나이에 5년 동안 꾸준히 잘 하는 게 쉽지 않고, 팀 내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크다”고 임영희의 손을 들었다.
임영희는 “혜진이는 젊고 앞으로 더 할 수 있으니까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말한 것 같다”면서 “후배들을 끌고 가는 부분은 기록 외적인 면에서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지만 MVP는 기록으로 판가름 나는 만큼 혜진이가 받아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또 “앞으로 팀을 끌고 갈 선수가 받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은퇴 얘기로 넘어갔다. 임영희는 “앞으로 2~3년은 더 할 수 있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내 속내는 모를 것”이라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을 크게 안 했는데 이제는 생각해 볼 때다. 내년 시즌 후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시즌까지 평균 30분 이상을 뛰었던 임영희는 올 시즌 29분18초로 출전 시간이 줄었다. 앞자리 숫자가 ‘3’에서 ‘2’로 바뀐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임영희는 “평균 출전 시간이 1~2분 차이지만 내가 볼 때도 숫자 하나로 다르게 느껴진다”며 “정상 기량을 유지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떠나고 싶다. 내년 시즌 후 1년을 더 하라면 할 수 있겠지만 최고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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