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100일째를 하루 앞둔 4일 오후, 35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2월에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같은 시간 덕수궁 대한문 인근에서는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맞불집회가 열렸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5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14차 범국민대회’에서 박 대통령 즉각 퇴진과 황교안 총리 사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등을 촉구했다. 한결 풀린 영상의 날씨에 시민들은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헌재의 2월 중 탄핵 인용을 함께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지난달 25일 특검에 압송되며 “억울하다”고 항변하던 최순실씨에게 “염병하네”라고 일갈했던 청소노동자 임모(65ㆍ여)씨가 발언대로 올라와 큰 박수를 받았다. 임씨는 “죄를 지은 사람이 더 잘 살고 큰소리 치는 세상”이라며 “정말 억울한 건 우리 국민인데, 억울하다고 외치는 (최씨의) 모습을 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임씨는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염병하네’ 구호를 외친 뒤 특검 관계자들에게 공정한 수사를 부탁했다.
이날은 지난해 10월 29일 첫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99일째 되는 날로, 경기 성남에서 온 한 가족이 케이크를 가지고 무대에 올라 ‘촛불 100일’을 축하했다. 이들은 “이 땅에 남아있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억압하는 박정희 귀신과 그 뒤에 있는 박근혜 귀신까지 물러가라고 팥죽도 쑤었다”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하루 전날 있었던 청와대의 특검 압수수색 거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인천에서 온 주부 이영주(49ㆍ여)씨는 “아직도 뭐가 그렇게 숨길 게 많은지 모르겠다”며 “당당하다면 오히려 다 공개해야 맞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대학생 배민호(24)씨는 “아직도 대통령은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그게 촛불시민들을 더 화나게 만들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보수단체의 집회를 보고 화가 나 참여했다는 시민도 있었다. 김태일(29)씨는 “보수집회에 사람이 더 많더라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며 “나라도 참여해야겠다 싶어 나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아들인 김씨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이금자(60ㆍ여)씨는 “중장년층이라고 해서 다 보수집회에 간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 싫어서 기꺼이 아들을 따라 나섰다”고 밝혔다.
같은 시간 덕수궁 대한문과 서울시청 인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맞불집회가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민중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주관으로 열렸다. 탄기국 측은 이날 집회에 20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보수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들고 ‘법치’를 외쳤다. 예비역 대령인 백동일씨는 이날 단상에 올라 “헌재는 오로지 법으로 심판하고 법으로 말하라”며 “우국 충정 애국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 끝까지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광택 탄기국 중앙회장은 “대통령이 너무 보고 싶다. 집회에 한 번 나와달라”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날 보수집회에는 김진태ㆍ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해 박 대통령의 법률상 대리인인 서석구 변호사가 참석해 무대 위에 올랐다.
오후 5시 30분쯤 숭례문 방향으로 행진하던 보수집회 참가자 일부가 지나가던 차량과 시비가 붙어 차량 일부를 파손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운전자가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항의를 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차량 근처로 몰려와 앞을 막고 차 유리 등을 파손했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가 차량을 움직이다가 경찰관에게 찰과상을 입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글ㆍ사진=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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