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만 두 번째다. 지난 1일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퇴임 후 권한대행으로 선출된 이정미(55) 헌법재판관 얘기다. 2013년 이강국 전 헌재 소장 퇴임 당시에는 전임 권한대행이던 송두환 전 재판관까지 퇴임하면서 이 재판관이 ‘대행의 대행’을 해야 했다. 결국 소장 역할을 두 번이나 맡게 된 ‘의문의 경력자’이지만 이번 자리는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의 앞날이 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날짜 3월 13일
“늦어도 3월13일까지는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 지난달 24일 박 전 소장은 공식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카운트다운 날짜를 밝혔다. 이 재판관의 임기 마지막 날이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탄핵심판 사건 심리를 위해서는 재판관이 7명 이상 출석해야 하고 탄핵 결정에는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박 전 소장 퇴임 전인 재판관 9명 체제에서는 66.7%(9명 중 6명)만 찬성해도 탄핵 결정이 가능했지만, 3월 13일 이후 이 재판관마저 퇴임하고 나면 남은 재판관 7명 전원이 출석해야 탄핵심판을 열 수 있게 된다. 만일의 사태로 재판관 중 한 명이라도 참석이 어렵거나, 재판관 2명이 탄핵에 반대의견을 내도 탄핵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재판관 퇴임 전 결정이 중요한 이유다.
최연소ㆍ비서울대ㆍ여성 헌법재판관
2011년 헌재 입성 당시 이정미 재판관은 파격적인 후보였다. 최연소 헌법재판관(당시 49세)인 것도 화제였지만, 대한민국 법조계 엘리트의 전형을 벗어난 ‘비서울대 출신 여성 법관’이라는 점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헌재는 보수적인 기구다. 현직 재판관을 포함해 역대 46명의 헌법재판관 중 33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여성 재판관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지명한 전효숙 전 재판관과 이 재판관 단 둘뿐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대변한다는 헌재의 이상과 역할이 재판부 구성에 잘 반영됐다고 보긴 어렵다.
때문에 이 재판관은 출발점부터 헌재의 균형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이 재판관을 지명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은 “비서울대 출신 여성 법관으로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보호라는 시대적 요청에 가장 적합한 후보”라는 지명 이유를 밝혔다. 이 재판관 역시 이에 화답하듯 취임 당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서도 따뜻한 배려심을 가지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말 진보적일까?
이정미 재판관이 탄핵심판의 핵심이 되면서 그의 성향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세간의 평가는 ‘대체로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근거가 되는 대표적 판결은 2014년 ‘물대포 헌법소원’이다. 2011년 한미FTA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시위현장에서 물대포를 발사한 행위가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행위가 이미 종료돼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 상황이 끝났다’며 이를 각하했다.
이정미 재판관은 여기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낸다. “물대포는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장비로, 구체적 사용 근거나 기준을 법에서 규정해야 하는데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이와 관련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위 판결 외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게시글을 심의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법률조항 위헌 심판(2012)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어 위헌”이라며 반대 의견을 낸 것, 교원의 정치활동 및 공무원 집단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에 대한 위헌심판(2014) 당시“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할 우려가 없는 표현까지 금지한다”며 반대의견을 낸 것도 ‘이정미 진보설’을 뒷받침한다.
이 재판관이 그러나 늘 진보적 결정만 한 건 아니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당시 주심이었던 이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에도 찬성했다. 이듬해 헌재가 간통죄 처벌을 정한 형법에 대해 위헌을 선고할 때는 “간통죄를 폐지하면 성도덕의 최소한의 한 축을 무너뜨려 사회 전반에서 성도덕의 문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합헌 의견을 내기도 했다. 결국 이 재판관의 판단은 사안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공정하고 엄격하게 심판하겠다”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이정미 재판관의 ‘성향’은 중요하지 않다. 탄핵 소추 사유인 공무상 비밀 누설,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 남용 등은 이념이 아닌 사실과 법률에 기초해 판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재판관은 신중한 성격이다. 재판관 취임 당시 그는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원칙적인 답변만 내놓아 ‘소신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취임 직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재판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재판도 한 건 결정하는 데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3~4년이 걸리는데, 청문회를 준비하는 2주 동안 짧게 생각한 뒤 ‘내 소신은 이것이다’라고 답변하는 것은 법률가로서 적절하지 못한 태도라 생각했다.” 소신이 없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그의 소신이라는 것이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절차의 공정성과 엄격성이 담보돼야만 심판 결과의 정당성도 확보될 것이다.”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으로 선출된 지난 1일 이 재판관은 다시 한번 신중한 판단을 강조했다. 헌법재판관으로서 그의 마지막 판단은 무엇이 될까.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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