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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길 잃은 보수, 서두르면 또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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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길 잃은 보수, 서두르면 또 넘어진다

입력
2017.02.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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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보수세력의 대안이자 희망을 자임해 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돌연 19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보수진영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 듯하다. 반 전 총장이 귀국하자마자 준비되지 않은 성급한 정치 행보를 이어 가며 정체성마저 흐리는 바람에 실망감이 컸지만, 그는 여전히 진보진영과 야권 후보에 대적할 수 있는 인물로 꼽혀 왔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의 도중하차에 따른 보수진영의 위기감과 황망함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일의 전후와 잘잘못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땜질식으로 그의 공백을 메우려는 보수 일각의 시도는 심히 우려된다. 또 다른 정치불신과 국정 희화화만 부추길 것 같아서다.

보수진영의 낭패감은 "공산당만 아니면 어디든 반 전 총장을 따라가겠다"는 묻지마 지지가 공공연히 쏟아질 때 예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정사에 전무후무한 탄핵정국이 초래된 원인이 무엇인지, 보수세력이 뭘 잘못했으며 어떻게 쇄신해야 하는지, 이런 과업을 이루려면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과 토론보다 권력을 놓을 수 없다는 욕심만 앞선 까닭이다. 반 전 총장 역시 '보수의 궤멸'이란 말까지 나온 국내 정치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보수 소모품 취급'이니 '정치인의 자기계산'을 탓하는 한가한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보수진영의 지지가 쏠리고 본인도 은근히 여권의 대안으로 부각되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정국과 차기 대선을 관리하는 엄중한 책무를 맡고 있는 데다 탄핵심판 중인 대통령 밑에서 요직을 두루 누려 왔다는 점에서, 후보로서 적절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한편에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탄핵정국의 정치적 책임을 지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등을 다시 호출하자는 얘기도 나오는 모양인데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법이다.

보수진영은 될성부른 주자가 없다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비전과 철학을 가진 젊은 후보가 있고 기회 또한 열려 있다. 현재론 대세가 야권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 등 남은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대선판의 유동성은 되레 커졌다는 분석도 많다. 대선이 일방적 게임으로 흘러가는 것은 협치나 소통보다 패권과 배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보수진영은 비록 한 박자 늦더라도 길게 보고 나라의 한 축을 맡은 소명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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