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학교 2주년 심포지엄
중학교 졸업 후 일반고 진학 대신
1년간 글쓰기ㆍ인문학ㆍ공방작업 등
대안 교과목 배우며 값진 경험
선생님들은 ‘길잡이’ 역할 뿐
잘하는 게 무엇인지 찾을 수 있고
학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날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대신 합창과 목공을 하고 인턴십에 나선다. 교사의 가르침을 그대로 공책에 받아 적지 않고 친구들끼리 문제를 만들고 풀며 발표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동네와 세계의 이웃을 만나며 대화ㆍ소통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2015년 3월 출범한 ‘오디세이학교’ 학생들의 일과다.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지난 2년 간의 오디세이학교 성과를 논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자유학년제를 따르는 오디세이학교 학생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 대신 이곳에 진학해 1년 간 글쓰기ㆍ인문학ㆍ문화예술ㆍ공방작업 등 대안 교과목을 배운다. 영어ㆍ수학ㆍ한국사 과목만 정규 교육 과정을 따르고 시험은 한 학기에 1번만 치른다. 1년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원래 소속된 고교로 돌아가 2학년 과정부터 학업을 잇게 된다. 2015년(1기)에는 40명, 지난해(2기)에는 82명의 학생들이 오디세이학교에 입학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한 자리에 모여 오디세이학교에서의 경험을 되새기고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한 해를 이 학교에서 보낸 송명준(17)군은 “처음엔 교과공부를 안 하는 게 불안해 따로 과외를 받고 도서관에서 공부도 했다”며 “하지만 학교에서 주어지는 과제를 해결하고 야외활동을 하며 여느 친구들이 배울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했어요”
학생들이 보통 또래들과 달리 오디세이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한 번 뿐인 삶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찾고 싶어서” 등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을 이끈 건 마음 한 켠을 묵직하게 짓누른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한다. 2기 정서현(17)양은 “중학교 때 시험 점수가 좋지 않자 교사가 ‘그러다 인생 망한다’고 나무랐고, 그 충격에 열심히 공부해 1년 만에 상위권을 차지하게 됐다”며 “하지만 성적에 따라 스스로를 자책하고 때로는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는 내 모습이 점점 두려워졌다”고 되새겼다. 정양은 이후 부모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망치듯” 오디세이학교로 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정양처럼 ‘안전한 피난처’를 원해 오디세이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1년 간 어떤 두려움이든 이겨낼 단단한 의지를 얻었다고 했다. 오디세이학교에서는 입학식부터 자치회의, 여행, 기획활동을 모두 학생들 스스로 꾸리도록 한다. 교사들은 ‘선생님’ 대신 ‘길잡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학생들 선택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고 방향을 바르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송명준군은 “막막했던 11박12일 여행과 책 만들기, 발표회 준비 등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면서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나를 발견했다”며 “중학교 때는 영어 단어를 외우는 단순한 일도 포기하기 일쑤였는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관성이 생겼다”고 전했다.
일방적 교육 시스템에 휩쓸려 입을 닫았던 학생들은 공감ㆍ소통의 가치에 눈을 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어른, 이웃을 만나면서 감정을 공유하는 법을 깨달았고, 치열하게 되돌아오는 ‘왜?’라는 질문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는 능력도 생겼다. 2기 박진슬(17)군은 “중학생 땐 나만의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고 시험공부에 허덕이는 친구들과 진지한 토론을 이어갈 여유도 전혀 없었다”며 “오디세이학교에서는 책 속 한 단락과 영화의 대사 한 마디로도 수십분의 대화가 이어질 만큼 깊은 소통 기회가 많다”고 설명했다.
“졸업 여부ㆍ성적으로 평가 말아주세요”
물론 오디세이학교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송재형 서울시의원(새누리당)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학교에 다니다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2015학년도에는 정원 40명 가운데 6명이 과정 이수를 중도 포기했고 이 중 3명은 복교 후 자퇴했다. 오디세이학교를 수료한 나머지 34명 중에서도 자퇴한 학생은 8명이었다. 복교한 뒤 학력 저하로 대학 입시에 뒤처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오디세이학교 길잡이들은 중도포기와 고등학교 자퇴를 실패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이 왜 이를 ‘선택’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천민정 오디세이학교 길잡이는 “여느 일반 고1 교실처럼 어디엔가 숨고자 하는 아이, 토론 도중 도망치고 싶어 하는 아이 등 적응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자퇴한 학생들은 글쓰기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고 있고 일부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년 간 오디세이학교를 관찰ㆍ연구해 온 노주희 같이교육연구소장도 “공교육을 끝마치진 못했지만 전에 없던 삶의 목표와 희망이 생긴 점을 높이 평가해주어야 한다”고 전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임기 이후’를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오디세이학교는 조 교육감의 핵심 정책이기 때문에 임기가 끝나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폐지될 수 있지 않느냐는 걱정에서다. 임유원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공교육이라는 견고한 체제와 대안교육이라는 체제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며 “오디세이학교가 설립 기반을 튼튼히 해 지속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마치고 일반 고등학교로 돌아가 1년을 보낸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2015년 5월부터 약 9개월을 오디세이학교에서 보낸 김수빈(18)양이 당차게 대답했다. “일반 고등학교로 돌아가 친구들을 맞이했을 때, 앞선 속앓이가 무색하게 저를 특별한 존재로 보거나 소외시키지 않았어요. 되레 혼자 자료를 만들어 자신 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어디서 이런 것들을 배웠느냐’며 물어 오곤 합니다. 보통 친구들과 조금 다르게 보낸 1년이 제 미래를 확 바꿀 힘이 됐다는 걸 확신합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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