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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 살아간 아버지 향한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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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 살아간 아버지 향한 오마주

입력
2017.02.0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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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눈으로 바라본 현대사

마동수는 부친 김광주 모티프

마차세는 김훈 본인을 닮아

아버지 삶 재구성한 초중반부

특유의 날선 문장을 살렸지만

아들 이야기부터 기력 못 미쳐

김훈의 신작 '공터에서'는 곳곳에 동어반복이 드러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작가 스스로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라고 밝혔듯이 작품에는 이전 발표한 산문들에 대한 자기 오마주가 담겨있다. 해냄 제공
김훈의 신작 '공터에서'는 곳곳에 동어반복이 드러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작가 스스로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라고 밝혔듯이 작품에는 이전 발표한 산문들에 대한 자기 오마주가 담겨있다. 해냄 제공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마동수는 1910년 경술생 개띠로, 서울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길림, 장춘, 상해를 떠돌았고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6·25전쟁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69세로 죽었다.”

첫 장 첫 줄부터 시종 건조한 문장은 더 이상 뺄 곳이 없이 경제적이다. “모호하고 약간은 비논리적인”(2007년 노컷뉴스 인터뷰) 한국어에서 미(美)를 구하는 작업은, 수식을 덜어낸 서늘한 서술에 있음을 김훈의 소설은 증명한다.

1일 발매된 장편소설 ‘공터에서’(해냄)는 작가 특유의 날선 문장을 스펙트럼 별로 맛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선 굵은 역사소설과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 등 작가의 기자시절 경험을 현대 말투로 풀어 쓴 소설을 합친 모양새다.

주인공은 1910년 태어나 1979년 사망한 남자 마동수와 그의 아들 마차세다. 한일병합의 치욕 속에서 태어난 마동수는 일제강점기에 형을 따라 만주로 가지만 형의 바람처럼 한의사가 되지 못하고 아나키스트들과 어울려 25년을 떠돌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온다.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 피난처에서 병원 빨래꾼으로 일하다 이도순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마장세, 마차세 두 아들을 낳는다. 중·장년기에 군부독재, 베트남전쟁 등을 겪는 그는 끝내 가정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방황하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비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했듯이 아들들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6ㆍ10 민주항쟁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다. 첫째 마장세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제대 후 괌에 둥지를 틀면서 가족과는 거의 의절한 사이가 되고, 둘째 마차세는 전방 일반전초(GOP)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에 부친의 임종을 접한다. 대학을 중퇴하고 주간경제잡지에 취직하지만 석 달 만에 정부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해직 기자가 된다. 마장세가 괌 현지에 고물운송업체 퍼시픽 파라다이스를 차리고, 마차세가 고속물류 운송직을 거쳐 장춘무역에 취직하면서 소원했던 두 형제는 “거래선”으로 다시 만난다.

6년만에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발간한 작가 김훈. 해냄 제공
6년만에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발간한 작가 김훈. 해냄 제공

“자전적 경험을 실마리로 집필한 작품”이라는 출판사의 설명처럼 소설 속 마동수는 작가의 부친 김광주(1910∼1973)를 모티프로 한 인물로 보인다. 경향신문 문화부장과 편집부국장을 지낸 언론인, 국내 최초의 무협지 ‘정협지’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김광주는 일제강점기 김구와 함께 항일운동을 했고 중국 상하이에서 의과대를 다녔다. 6ㆍ25 피난 중 이승만 대통령의 처신을 묘사한 장면을 비롯해 마동수에 관한 서술 중 일부분은 지난해 경기르네상스포럼이 주최한 아버지 김광주의 심포지엄에서 작가가 발표한 ‘소설가 김광주의 삶과 문학’ 등 기존 발표 글과 겹친다.

차남 마차세가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로 취직한 점, 이후 회사 면접을 보면서 “말투가 불량합니다. 저항기가 있군요”라는 평을 받는 일화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겹치는 대목이다(김훈의 한국일보 면접 당시 사장이 “눈빛이 불량해서 기자 할 수 있겠다”고 합격시킨 사실은 인터뷰로 여러 차례 소개됐다).

각종 기록을 밑천 삼아 아비의 삶을 재구성한 초중반부는 이전 역사소설을 떠올릴 만큼 밀도 높은 문장으로 독자 기대치를 채워주지만, 아들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중후반부는 “기력이 미치지 못했다. 수다를 떨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는 작가의 말처럼 다소 힘이 빠진 전개로 흐른다. 한자어를 집약해 빚은 초반부가 김훈 문장의 특장을 잘 살리는데 반해 “늘 비음이 섞여” 있는, “말하는 사람의 몸속을 통과해 나온 물기로 젖어”있는 나긋한 박상희(마차세의 처)의 말투로 전개되는 후반은 이런 화법에서 미끄러져 나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996년 첫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이후 9번째 장편이다. 2011년 10월 ‘흑산’ 이후 5년여 만의 장편이라 일찍부터 주목 받았다. 출판사는 초판 5만5,500부(반양장 5만부·양장 5,500부)를 찍었고 5,060부가 출간 전 예약판매 됐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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