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가 정부의 부패사범 사면 조치를 놓고 시끄럽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정부 타도를 외치면서 1989년 공산 정권 붕괴를 촉발한 민중 봉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1일(현지시간) APㆍ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시위대 15만명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정부청사 앞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도적들” “쥐새끼들” 등 격한 구호를 외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전국 50개 도시에서 30만명 이상이 시위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공산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권좌에서 끌어 내린 89년 민주화 혁명 이후 최대 인파가 운집했다”고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는 전날 정부가 5년 이하 형을 받고 수감된 죄수와 직권남용으로 20만레이(5,500만원) 미만의 국고 손실을 끼친 부패사범을 대거 사면하는 긴급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촉발됐다. 루마니아 정부는 교도소 과밀 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루마니아의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2만2,300달러(2,557만원)다. 국민소득의 두 배가 넘는 세금을 가로챈 공직자를 사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시위대는 사면 조치를 정권 실세 구제를 위한 꼼수로 의심하고 있다. 집권 사회민주당(PSD) 연정의 리비우 드라그네아 대표는 과거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승리하고도 총리직에 오르지 못했고, 합법적으로 권력을 얻기 위해 사면을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긴급명령은 루마니아의 ‘부패와의 전쟁’ 노력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루마니아 반부패청(DNA)은 지난 3년간 직권남용 혐의로 1,171명의 개인과 기업 및 단체 33곳을 기소했고, 현재도 2,151건의 부패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이들이 횡령한 국고 손실액만 10억달러(1조1,465억원)에 이른다. 반발 여론이 위험 수위에 이르자 루마니아 최고사법위원회는 긴급명령을 헌법재판소에 회부하기로 했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부패와의 싸움은 지속돼야 한다”며 루마니아 정부의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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