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만 나왔다고 무시하는 거냐”, “이 XX야”
지난달 31일 밤 11시 부산발 수서행 고속철(SRT)을 탄 대학원생 이모(27)씨는 같은 객실에 탄 취객이 이렇게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피우자 상당한 위협을 느꼈다. 그러나 출발 준비를 하던 승무원은 “조용히 해달라”는 주의만 주는 데에 그쳤다. 욕설을 내뱉고 출입문을 발로 차는 등 취객의 소란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이씨는 112로 신고했다.
2일 부산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등에 따르면 열차 출발 4분 전 신고를 받은 철도경찰은 곧바로 출동했지만 기차는 이미 떠난 후였다. 이에 SRT 승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했지만 승무원이 “큰 소란을 피운 건 아니고 이미 진정된 상태”라고 답했다. 승무원은 취객에게 “계속 난동을 부리면 다음 역에서 하차시키겠다”고 경고했다. 철도경찰은 동대구역에서 탑승해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승무원이 거듭 “진정됐다”고 설명, 결국 열차 내 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취객의 난동은 끝나지 않았다. 객차 통로에 앉아 하차하는 고객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술 냄새를 풍기며 열차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기차가 수서역에 도착할 때까지 승무원들은 별다른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씨는 “만약 흉기를 갖고 있었다면 많은 승객들이 다쳤을 것”이라며 “승차 직후부터 승무원ㆍ승객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쳤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SRT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장 방침에 따라 경고 조치 등을 했다”면서도 “난동 부리는 승객 역시 고객이기 때문에 점잖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5일 고속철도에서 발생한 폭행ㆍ난동 행위를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6일 전이었다. 그러나 당국의 공언은 허울뿐이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2일 항공기에서 승객이 난동을 부릴 경우 제어 수단으로 올가미형 포승줄 외에 수갑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마련했다. 또 보안요원과 승무원들은 기내 난동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영상은 경찰에 전해져 난동 수사의 증거로 쓰인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고속철도 소란행위에 대한 처벌도 더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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