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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려를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입력
2017.02.0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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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내내 우려라는 말을 달고 살아서 우려가 호라는 이야기까지 듣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 후 본인에게 쏟아지는 비판과 우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나마 유엔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는 동성애를 비롯한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도 국제적 기준에 맞춰 상당히 적절한 우려도 표명하던 그는 한국 내 보수 유권자 층을 의식하다 보니 재임 시 발언을 뒤집는 문제발언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러다가 유엔에서 전임 총장을 고발하면 어쩌냐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설마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라고 우아하게 우려만 표명해서 될 자리는 아니었겠지만, 멀고 높은 곳에서는 그럭저럭 이미지 관리가 되었던 듯한 반 전 총장은 귀국하자마자 갈 데 안 갈 데 안 가리고 바삐 시찰을 다니며 우려와 격려를 표명하면서부터 제대로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하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복안이 없는 그런 행태로는 촛불로 한껏 고양되어 있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2017년 지금의 한국은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자리와 역할에 대해 조금의 자각도 없었던 인물을 겨우, 막 탄핵하려는 참이 아닌가 말이다. 반 전 총장은 박근혜 정권의 급작스러운 몰락을 다시 없을 정치적 기회라 여겼을 수 있겠으나, 굳이 따지자면 왕자ㆍ공주형 의전대통령 시대에 대해 환멸이 고조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탄핵국면은 그가 출마하기에 좋은 운때는 아니었다.

물론 우려가 전문이라는 반기문 전 총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금의 현실에 대해 우려와 근심을 멈추기는 어렵다. 엊그제부터 SNS에 등장한 ‘환태평양 근심대’라는 제목의 이미지는 태평양을 둘러싸고 일본의 아베, 북한의 김정은, 남한의 박근혜, 필리핀의 두테르테,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가 만들어내는 불안한 정세를 꼬집고 있다. 환태평양 지역 밖이라고 사정이 나아 보이지는 않지만 기왕에 갈등으로 가득 차 있던 현 세계에 가장 예측할 수 없이 위험한 뇌관으로 새로이 등장한 것이 미국의 새 대통령 트럼프라는 점에서 환태평양 근심대는 세계인의 근심거리라 불려 마땅하다.

현재의 세계는 문제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할 대중과 정치인이 많이 있을 만큼은 멀쩡하지만,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어 갈등의 근원을 건드리고 구조적 변화를 꾀할 만큼의 정치적 역량은 부재하다. 당장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가져오는 트럼프의 반 이민조치에 반대하고 그의 막말에 분노하기는 쉽다. 하지만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현실과 2012년부터 시작된 인종차별 반대운동 ‘블랙 라이브즈 매터(BLMㆍ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를 촉발시킨 현실의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획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선주민들의 땅을 약탈하면서 이민자의 나라로 시작한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도외시하고, 이미 미국적 삶의 일부인 피부색 검은 미국인들과 무슬림 미국인들을 타자로 모는 행위와 반 이민조치는 실상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이는 유권자의 표만 쫓는 정치인들은 흔히 외면하고 싶어하는 현실이다.

국내에서도 특검 수사가 진척됨에 따라 대통령 측근뿐 아니라 고시를 통해 출세한 소위 사회지도층 그리고 재벌들을 포함한 한국사회 권력층의 세밀한 치부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중이라 할 때,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나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이 문제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오래되었는가라는 점이다. 지금은 우리가 좋은 삶이라고 믿어왔던 것들, 자식에게 떠밀 듯이 권해왔던 삶이 얼마나 허구인지가 밝혀지는 중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정치 역시 이러한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들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일 필요가 있다. 우려를 표하는 데 능했던 정치인을 낙마시키는 데 그치지 말고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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