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봉균 떠났지만… 이규성ㆍ이헌재는 여전히 현역 맹활약
알림

강봉균 떠났지만… 이규성ㆍ이헌재는 여전히 현역 맹활약

입력
2017.02.02 04:40
0 0

맏형 이규성 투자업계서

Mr 구조조정 이헌재는 싱크탱크 이사장으로 활동

정덕구ㆍ진념 등 강연ㆍ연구

실무 조원동은 최순실 게이트 연루

1999년 11월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 직후 결과발표를 위해 전철환(사진 왼쪽) 한국은행 총재, 이헌재(왼쪽 두번째)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왼쪽 세번째) 재정경제부 장관 등이 브리핑 장소로 향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9년 11월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 직후 결과발표를 위해 전철환(사진 왼쪽) 한국은행 총재, 이헌재(왼쪽 두번째)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왼쪽 세번째) 재정경제부 장관 등이 브리핑 장소로 향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외환위기 당시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 냈던 강봉균(74) 전 재정경제부 장관(1999~2000년 재직)이 지난달 31일 췌장암으로 숨지면서 당시 경제팀의 성과와 존재감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마침 올해는 외환위기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당시 경제팀의 위기극복 비결을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전 정권으로부터 외환위기라는 큰 숙제를 물려받은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정권 하의 경제팀은 자민련 추천인사(이규성ㆍ이헌재)와 호남 출신 관료ㆍ학자(강봉균ㆍ진념ㆍ전철환)가 섞인 이질적 구성에도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대통령은 경제팀에 힘을 실어줬고 ▦맏형 이규성의 리더십 ▦꾀돌이 강봉균의 기획력 ▦미스터 구조조정 이헌재의 추진력 등 삼박자가 모두 들어맞으며 위기 극복이 가능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대부분 여전히 왕성한 현역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현실정치에 참여(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하며 현역을 자처했던 강 전 장관처럼 20년 전 환란 소방수로 나섰던 ‘용사’들은 고령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소방수 그룹 맏형이던 이규성(78) 전 재경부 장관(98~99년)은 아직도 투자업계의 현역이다. 그는 부동산 투자 뮤추얼펀드(리츠)를 중심으로 한 코람코자산신탁의 회장으로 일하다 2014년부터 회사발전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회사 미래전략 구상 ▦사회공헌활동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노태우 정부 재무장관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접었다가, 외환위기 수습에 차출돼 98년 김대중 정부 첫 재경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지만 공동정부를 구성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측 추천을 받아 그를 기용했고, 출중한 능력을 갖춘 공무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정수장인 이 전 장관과 호흡을 함께 한 금융수장 이헌재(73) 전 금융감독위원장(98~2000년)은 싱크탱크인 여시재(與時齋)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0년과 2004년 재경부 장관을 두 차례나 맡았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시엔 신속한 대처로 시장과 국제신용평가사를 안심시켜 정치위기가 경제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강 전 장관은 머리 좋은 인재가 즐비한 경제관료 중에서도 ‘브레인 중 브레인’으로 꼽힐 정도로 인정받았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경제개발 역사의 마지막 산 증인”이라며 “경제수석 및 장관 재직시 본인 연설을 직접 썼는데, 그대로 받아 쳐도 버릴 문장 하나 없을 정도로 논리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김대중 정부 초 청와대 금융비서관(98~2000년)으로 환란 대응 금융정책 수립을 주도했던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현대로템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 비서관(98~99년)이던 오종남(65) 전 통계청장은 현재 새만금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부분 왕성한 현역이지만 전철환(2004년 별세) 전 한국은행 총재처럼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강연ㆍ고문활동도 활발

환란 극복기 산업정책을 이끌던 정덕구(69) 전 산업자원부 장관(99~2000년)은 연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동북아시아 전략 연구기관인 니어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97년 IMF와 협상에서 재경원 차관보로 실무협상을 주도했던 그는 스탠리 피셔 당시 IMF 부총재를 만나 “한국에선 IMF가 나는 해고됐다(I’m fired)의 약자”라며 몰아세웠고, 결국 IMF는 계획했던 초고금리 정책을 완화하기도 했다.

위기 때마다 중요 보직으로 불려 다니며 ‘직업이 장관’이란 말까지 낳았던 진념(77) 전 부총리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를 거쳐 최근엔 강연 등 대외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노동법 처리 당시 노동부 장관(95~97년), 환란 때는 기아자동차 회장(97~98년), 구제금융 위기 수습 땐 기획예산처 장관(99~2000)과 재경부 장관(2000~2002년)으로 투입됐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예산 편성을 담당했던 안병우(70) 초대 예산청장 역시 재단업무에 관여하거나 강연 등으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선임행정관(98~99년)이던 조원동(61)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CJ그룹 경영진 사퇴를 압박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2가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보고회에서 외환위기 극복의 핵심 역할을 했던 전직 경제관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봉균ㆍ이규성ㆍ진념ㆍ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2가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보고회에서 외환위기 극복의 핵심 역할을 했던 전직 경제관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봉균ㆍ이규성ㆍ진념ㆍ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