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펑펑 내린 지난달 21일,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의 청년허브 다목적홀은 열기로 가득 찼다. 웃음, 눈물, 환호, 갈채, 감동의 다섯 시간을 함께한 이들은 열정대학 학생들. 3개월간의 학기를 마무리하는 열정스테이지가 펼쳐졌다.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준비한 무대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더빙해서 상영한 ‘도도한 더빙’을 시작으로 랩, 강연, 춤, 음악극, 페미니즘학과 발표, 단편영화제와 연극까지 무대에 오른 학생들과 이를 지켜보는 객석의 학우들이 나눈 것은 우정과 격려였다. 조금 서툴러도 그래서 더 기특한 청춘을, 마침내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많이 성장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뿌듯함을, 서로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갈망으로 열정대학을 만난 뒤 ‘달라진 나’를 이야기한 3명의 열정 스피치는 뭉클했다. 연사가 목이 메어 말을 멈출 때마다 객석에서는 “울지마” “괜찮아” “예쁘다” “멋있다”를 연호하며 응원했다. 단편영화제에서 ‘발연기’ 상을 받은 학생은 “어이가 없다”는 수상 소감으로 폭소를 자아냈다. 웃음도 눈물도 함께여서 더 빛났다.
열정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20대 청년들의 진로 탐색을 돕는 소셜벤처기업이다. 사회문제 해결이 목표인 예비사회적기업으로서 이윤의 3분의 2 이상을 청년 진로교육에 재투자한다. 2009년 싸이월드 클럽으로 출발해 2012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대안학교도 아니다. 기존 대학의 장점을 인정하되, 대학이 채워주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만의 꿈을 찾아 뛰어놀 수 있는 ‘공존대학’ 을 표방한다. 지금까지 4,000명 정도가 열정대학을 거쳐갔다. 현재 재학생은 174명이고 2월부터 26기가 시작됐다.
열정대학은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과목이 되는 학교다. 열정대학 본부가 제공하는 과목도 있지만 학생 스스로 만들고 팀원을 모아서 진행한다. 한 학기 3개월 동안 100개가 넘는 과목이 생긴다. 잘먹고잘살기 학과, 섹스학과, 알통학과, 함해봐학과, 내면검색학과, 추억회상학과, 연애조작단과, 물음표학과, 번지점프 학과, 개드립쳐볼과, 멍때리기 학과... 알통학과는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었다. 연애조작단과는 연애에서 고전하는 친구를 도왔고, 섹스학과는 내 몸과 성 주체성을 공부하며 깨닫는 과목으로 인기를 끌었다. 정치학, 철학, 경제학, 페미니즘 독서토론, 부모학과가 있는가 하면 시골에서 2박 3일 동안 열 끼를 챙겨먹는 십(十)세끼 학과, 매일 턱걸이 연습해서 등 근육을 키우는 등신학과도 있다. 네버랜드가 실존한다고 믿는 학생은 디즈니학과를 만들었고, 섹스학과를 개설해 이끈 졸업생은 잘 나가는 성교육 강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자전거에 미쳐서 자전거학과를 만들었던 학생은 자전거와 교육을 결합한 사회적기업을 창업했고, 1년에 200편 가까이 연극을 보러 다니며 공연학과를 개설했던 학생은 공연 제작자가 되었다. 춤을 좋아하는 수의사는 댄스으리학과를 만들어 틈틈이 연습해온 군무를 선보였다. 그렇게 다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배우며 좌충우돌하면서 나만의 꿈을 찾아 간다.
열정대학은 20대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학력이나 스펙은 아예 안 본다. 나를 찾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로 살고 싶은 청년이라면 모두 환영이다. 대학생이 많고 직장인도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청춘도 있고, 50대가 등록한 적도 있다. 등록금은 20대 미취업자는 15만원, 20대 직장인은 20만원, 30대는 25만원이다. 선택과목 27개, 전공과목(심화과정) 3개를 하면 수료, 선택 90개와 전공 10개를 하면 졸업이다. 과목별 시간과 장소는 팀원들끼리 자유롭게 정한다. 대학생과 직장인이 많아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주로 모인다. 전공 과목은 독서와 토론, 전문가 인터뷰,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지난 학기 과목인 ‘비커밍 도슨트 학과’ 2기는 온라인 전시 설명 프로젝트로 학기를 마감했다. 6명의 팀원이 각각 세잔, 뉴욕현대미술관, 음악과 미술 등 주제를 정해 스크린 영상으로 발표했다.
열정대학에서 ‘덕수쌤’으로 불리는 유덕수 대표는 “열정대학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진로 플랫폼이자 누구나 선생님이 되는 학교”라고 설명한다. “진학과 취업을 목표로 한 교육은 진로 교육이 아니다. 진짜 나를 찾아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한 진로 교육이다. 너나 없이 자기계발을 말하지만 ‘자기’는 없고 ‘계발’만 강조한다. 누구나 장점이 있지만, 그것을 격려하기 보다는 단점을 보완하라는 압박이 더 많다. 그렇게 사는 것을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나.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것이 열정대학의 임무다.”
다양한 경험과 진로 교육 프로그램이 열정대학의 두 축이다. 그가 진행하는 입학설명회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로 살자며 그것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권한다. 나이와 직업, 학벌에 상관없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 20대 청년들이 자신만의 꿈을 향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심층 자기 분석 프로그램으로 학기를 시작한다.
열정대학에서 학생들이 만드는 과목은 더러 장난 같고 쓸데 없는 짓처럼 보인다. ‘놀자판’ 같다, 동아리 활동이냐, 취업 준비만 해도 바쁜데 열정대학 다니는 걸 보면 시간이 많은가보다 같은 시선을 만날 때 유 대표는 이렇게 묻는다. “놀이도 교육이 될 수 있다. 쓸데 없다고? 쓸데 있는지 없는지를 왜 남이 판단하는가. 욕망은 저마다 다른데, 왜 하나의 모델을 강요하는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는 말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하지만 열정대학을 찾는 청춘들이 품고 오는 간절함을 보면 더 열심히 해보라고, 그리하여 길을 찾으라고 격려하는 게 마땅할 듯하다. 그들은 마음껏 헤맬 권리, 꿈 꿀 권리, 나를 사랑할 권리, 그리하여 나만의 삶을 살 권리를 향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들이 용솟음 칠 때까지 기다려줘도 좋지 않을까. 실패해도 괜찮다고, 한 번 해 보라고 응원해도 좋지 않을까. 열정이라는 엔진이 꺼지지 않는 한 청춘은 언제까지나 청춘일 것이므로, 끝내 솟구칠 것이므로.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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