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교섭 등 통상압력 피하려
“美현지 수십만 명 고용 증가 효과”
고속철·AI 등 투자 제안서 준비
反이민정책 日 내부 비판에도
“주시하겠지만 코멘트 삼가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수십만명의 고용을 창출할 ‘경제협력 선물세트’를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또 유럽 주요 정상들이 비판하고 있는 이슬람권 7개 국민 입국금지조치에 대해서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향후 대일 통상압력 완화를 겨냥한 트럼프 ‘입맛 맞추기’ 행보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1일 교도(共同)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오는 10일 열리는 미일정상회담에서 고속철도, 에너지,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도움을 줄 포괄적 정책패키지를 내놓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미일성장고용 이니셔티브’로 명명한 이 제안을 통해 일본 측은 수십만명의 미국 현지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지역의 고속철도계획 등 인프라 정비를 돕고 셰일 오일개발에 투자하는 한편 AI와 로봇기술 채용을 도와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이 골자로 알려졌다. 미일 양국이 공동 참여해 현지 고용을 대량으로 늘리고, 일본 기업들이 보유한 AI 등 첨단기술을 제공해 윈윈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기업의 미국산 셰일가스 구입을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할 예정이다. 셰일가스 반입 확대는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감축 효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아베 정부의 이런 공세적 구애행보는 자동차분야 등 대일무역적자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을 누그러트리기 위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 아베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본이 미국에서 고용을 창출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트럼프 측은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경쟁력이 높은 농산품을 포함한 미일자유무역협정(FTA)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으로선 내심 별다른 이익이 없는 미일FTA 교섭을 피하고 싶어 하며,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FTA 교섭 대신 경제협력 패키지를 내밀 생각이라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정책 시행에 대해 유독 아베 총리가 언급을 피하는 것을 두고 일본 내에서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3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의 조치에 대한 질문을 받자 “미국이 출입국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주시하지만 코멘트는 삼가겠다” “입국관리는 내정사항”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제1야당인 민진당의 오구시 히로시(大串博志) 정조회장은 “(미국의 행정명령은)인권과 자유, 평등, 보편적 가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라며 “세계의 리더가 목소리를 높이는데 일본만 발언을 삼가는 것은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아사히(朝日)신문도 “유럽정상들이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본정부 내에선 “미국을 비난하면 일본도 난민ㆍ이민 수용 확대를 강요당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를 자극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이 전했다. 실제로 일본은 2015년에 난민신청이 7,586명이었지만 인정받은 사례는 27명에 불과할 만큼 난민수용 장벽이 높다.
한편 미일 양국은 오는 10일 워싱턴 정상회담에 이어 11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에서도 회담을 한번 더하는 방향으로 조정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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