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 지역 여자 고교 배구 경기 휘슬이 울리기 직전, 경기장에서 미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자 기이한 광경이 연출됐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에는 기립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고교배구팀 허리케인스 선수들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무릎을 꿇은 채 기립을 거부했다. 끝에 앉아있던 단 한 명의 선수만 일어서서 경의를 표했다. ESPN은 1일 이 어색한 광경의 뒷이야기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먼저 기립을 거부한 허리케인스 선수들의 단체 행동에는 흑인, 유색인종 등 미국 내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에 저항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지난해 9월, 경찰에 의해 흑인이 피살되는 사건이 잇따르자 미식축구리그(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29)은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가 연주될 때 기립을 거부했다. 그는 곧 거센 비난을 받았다. 캐퍼닉은 경기가 끝난 후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의 국기를 향해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해 일어서진 않겠다”고 NFL 홈페이지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후 많은 팀의 선수들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을 꿇거나 주먹을 들어올려 캐퍼닉과 뜻을 같이한다는 것을 표현했다. 허리케인스 선수들도 캐퍼닉의 항의 행위에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팀원 중 메건 라이스는 단체행동에 동참하기를 거부하고 혼자 기립했다. 동료들의 정치적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라이스는 “(미국 내 인종차별 등) 부당함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기립을 거부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라며 “나는 국기와 국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자신이 함께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의 행동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자랑스럽다”며 존중을 표했다.
라이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군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어 국기나 참전용사를 존중하지 않는 항의 방식이 편치 않다면서, 동료들의 방법이 생각보다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기립을 거부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차라리 동맹휴업을 주도하는 게 더 실용적인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라이스의 생각이 팀의 단결력을 저해할 수도 있었지만, 동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한 동료는 “라이스가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와 거리를 두지 않는다”며 “그를 존중하고, 라이스 역시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설명했다. 실제로 라이스는 지난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225득점을 성공시키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라이스가 처음부터 동료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에는 ‘동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라는 생각에 무척 긴장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그는 이어 “몇 경기를 치르고 난 뒤, 동료들이 내 행동에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 편안해졌다. 심지어 서로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내 결정을 존중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팀의 단결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허리케인스 팀이 리그에서 퇴출되어야 한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허리케인스 팀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에도 스포츠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고 있다. 라이스가 혹여 팀에서 고립될까 걱정했다는 코치는 육체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고 밝혔다. 라이스와 동료들은 손을 어깨에 올려놓는 것으로 코치의 걱정을 해결했다. 코치는 “라이스가 손을 동료의 어깨에 올려놓는 것은 우리 팀이 여전히 하나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라며 “당신도, 나도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정우진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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