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인사인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자리에 송성각(59ㆍ구속기소)씨가 내정되는 과정에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물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한 과정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1일 열린 차씨와 송씨 등 광고회사 포레카 지분 강탈 5인에 대한 3회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 회사 컴투게더 대표 한상규(61)씨는 “송씨가 장관을 만들어 주겠다는 차씨에게 이력서를 넘겨 줬고 이후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아 김 전 실장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한씨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이 송씨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일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이에 송씨가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한 뒤 돌아왔다는 것이다. 송씨는 회사에 다니던 중 있었던 송사 때문에 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차관급으로 자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한 사실도 한씨에게 전했다. 이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공모가 시작됐고 송씨가 낙점됐다. 한씨는 송씨가 대학 후배인데다 광고업계에서 6년간 함께 근무했고 아들을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키는 등 가까운 사이라 자신에게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된 과정을 여러 차례 털어 놨다고 밝혔다.
수 십 년 쌓아 온 우정도 권력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날 법원에서는 한씨가 송씨 등과 통화한 4시간 분량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차씨 측 포레카 지분 강탈에 저항하던 한씨에게 송씨가 전화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례를 들먹이며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송씨는 “성완종도 나쁜 사례인데 수백 명한테 돈을 뿌리고도 휘몰아치기 시작하니까 안 지켜졌다. 김우중이도 망하고 싶어 망했겠냐”며 차씨 측이 원하는 대로 들어줄 것을 종용했다. 또 “그들이 광고주를 겁주거나 해서 형님 회사 망하게 하는 방법은 108가지”라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도 했다. 하루에도 수 차례 이 같은 전화를 받은 한씨는 “송씨가 누군가를 대리해 협박하는 것으로 느꼈다”고 증언했다.
대기업 광고를 수주해 이권을 챙기려던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는 2015년 1월 자신이 실소유주인 광고대행사 모스코스를 설립한 뒤 차씨 등을 내세워 포스코 계열사인 광고대행사 포레카를 인수하려고 했으나 한씨의 광고회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지분 강탈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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