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글로벌 환율전쟁의 신호탄을 쏘았다. 중국, 독일, 일본 등 미국과의 교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는 국가들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칭하며, 이를 빌미로 무역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 직후 유로, 중국 위안, 일본 엔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ㆍ달러 환율도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는 등 국제 외환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 제약회사 임원들과 만나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며 “이들 국가는 외환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도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큰 폭으로 절하해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을 주장했다.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기존 무역협정의 재협상 및 탈퇴 ▦취임 후 100일 이내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약속해왔다. 실제로 취임 직후 TPP 탈퇴 공약을 실천한 상태다. 따라서 이날 발언은 환율을 고리로 중국 일본 독일 등 대미 무역 흑자국, 특히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통령이 ‘중국=환율조작국’지침을 제시한 만큼, 실무 부처인 재무부도 서둘러 후속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행정명령 등 비상수단이 동원될 수 있다. 현행 ‘무역촉진법’은 매년 4월ㆍ10월 관련 보고서를 제출토록 하고, 조작국으로 지정해도 시정조치를 1년이나 지켜본 뒤에야 보복이 가능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무부가 예정보다 일찍 보고서를 내놓고, 이를 명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법 201조, 301조 등을 근거로 실력 행사를 할 수도 있다. 실력행사는 고율관세를 부과하거나 일부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는 방안이다. 한 관계자는 “이런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되지만, 중국이 WTO에 제소하고 시정하는데 최소 1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환율 전쟁’ 대상에 한국이 휩쓸려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태미 오버비 미국 암참 부회장은 “트럼프 정권이 중국과 함께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노무라그룹의 루이스 알렉산더 미국경제실장도 “재무부가 내놓을 보고서에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 한국을 조작국으로 올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대미 흑자규모가 중국ㆍ일본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원ㆍ달러 환율 움직임도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막판 명단에서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주미 대사관 김윤상 재경관도 “한국의 논리와 입장을 꾸준히 미국 측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 문제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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