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세월호 참사 직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일 오전 9시30분쯤엔 세월호가 이미 많이 기울어져 구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4ㆍ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관계자는 김 수석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잘라 말했다.
김 수석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10회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수석은 이날 세월호 참사 당일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증언했다.
그는 "세월호 당일 오전 9시33분에 YTN의 보도를 보고 해경 상황실에 연락해 상황을 파악했는데 당시에는 사건의 심각성을 몰랐다"고 말했다.
김 수석에 따르면 국가안보실 직원은 참사 당일 오전 9시19분쯤 YTN의 자막을 보고 해경 상황실에 연락해 사고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약 14분 후인 오전 9시33분쯤 국가안보실은 해경으로부터 팩스로 첫 보고를 받는다.
김 수석은 "보고에는 사고가 났다는 것과 위치, 배이름,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었던 정도였다"며 "이런 보고만 갖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기가 부족해 현장에서 구조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구조세력은 얼마인지 추가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보고를 종합해 오전 9시50분쯤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할 첫번째 문서를 작성했고 오전 10시쯤 인쇄해 부속실에 전달했다"며 "대통령이 최초 사고를 인지한 시점은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뒤였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언론에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나고서는 "직원들이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정상적으로 식사도 한 거로 기억한다"며 "오후 2시25분쯤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긴박하게 상황이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김 수석은 오전 9시21분쯤에 세월호가 이미 45도 기울었고 빠른 속도로 계속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9시30분까지가 '골든타임'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수석은 "오전 9시30분쯤 세월호가 51도 정도 기울었는데 세계해상기구 권고사항에 따르면 배가 이 정도 기울면 탈출이 어렵다고 본다"며 "대통령이 오전 10시30분쯤 해경청장에게 직접 특공대를 투입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때는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여서 실행하기 어려운 지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해경청장이 대통령의 지시 전화를 받을 때 구조가 어렵다는 사실을 보고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게 우리들 생각이다"며 "그럼에도 대통령은 제가 보기에는 적절한 지시를 계속했던 걸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수석은 “미국 9ㆍ11테러와 영국의 지하철 테러, 파리 테러 등 모든 사건은 현장 중심으로 이뤄진다”며 “선진국을 보면 대형사건의 모든 건 현장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지, 국가 원수 책임이란 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 같은 김 수석의 주장에 세월호 특조위의 한 조사관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이 조사관은 뉴스1과 통화에서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는 김 수석의 주장에 대해 "국가안보실은 벙커에서 해경으로부터 팩스로 보고받기 전 구두로 두 번에 걸쳐서 배의 기울기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며 "짧은 간격으로 세월호가 30~40도에서 60도로 기운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고 어떻게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할 수 없었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또 오전 9시30분쯤이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오전 10시12분쯤이면 세월호 좌현은 완전히 침몰되고 우현만 조금 남아있는 상황에서 민간에서 난간에 매달린 승객을 구하고 있었다"며 "오전 9시30분 이후에도 구조는 계속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참사 당일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은 오전 9시45분 선장과 선원들을 구한 뒤부터는 더는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다. 오전 10시30분까지 세월호에 들어가 승객을 구조한 해경 역시 없었다.
그는 "청와대에서는 급격히 기우는 세월호에 관한 보고를 받았고 그 위급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거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해난사고나 선박 전문가 등을 소집해 침몰을 가정한 대책을 긴급하게 세우고 지시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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