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기 시트콤 ‘프렌즈’ 의 케빈 브라이트 감독이 해외 반려동물 보호단체의 대표들과 함께 지난 주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 개정안 지지와 한국 반려동물 복지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이 방문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명동과 인사동 등 번화가에서 젊은이들과 만나 그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기 위한 인터뷰도 하고, 유기견 보호소와 강아지 번식장을 촬영하는 빠듯한 일정을 진행하고 출국했다.
브라이트 감독은 촬영 중에 번식장에서 한 마리, 길거리의 상점에 묶여있던 한 마리, 총 두 마리의 강아지를 구조했다. 그와 함께 미국에서부터 동행을 했던 이도 농장을 방문 후 계획에 없던 많은 수의 강아지를 구조해 모두 필자의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짧은 기간 동안 모두 10마리의 강아지들이 검진을 받았는데 불행하게도 강아지들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디스템퍼(홍역),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회충 감염, 원충(지알디아) 감염, 세균성 장염, 호흡기 질환 등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전염성 질환에 감염되어 있었고, 그 중 한 마리는 병원에 도착하자 마자 홍역을 이기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유사한 상황은 불과 얼마 전에도 있었다. 여러 곳의 입양처에서 강아지와 고양이 20여 마리를 입양한 보호자가 필자의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도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되어 있었다.
수의학의 발달과 전문 의료진, 최첨단 장비를 통해 질병의 조기 진단이 가능하고 중증의 질환도 치료가 되는 우리나라에서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이토록 무방비 상태로 전염성 질환이 퍼져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수의사로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경험이었다. 격리 입원실이 있는 필자의 병원에도 전염성 질환으로 내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사람도 옛날에는 전염병으로 인한 유아 사망률이 높았다가 이젠 옛말이 된 것처럼, 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돌봄을 받는 반려동물들은 예방접종과 구충을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에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에 내원하지 않고 있는 반려동물들, 단체로 양육되는 동물, 유기된 동물들은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다. 번식장이나 경매장을 통하는 반려동물들 역시 예방접종과 구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분양되는 경우가 많다.
수의사 단체 및 동물병원에서 예방접종과 구충의 중요성을 보호자의 교육을 통해 전파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예방접종률은 일본이나 미국의 절반 수준도 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방접종과 구충은 전염병으로부터 반려동물을 보호하는 사랑의 시작이다. 반려동물 전염병 박멸을 위해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브라이트 감독이 구조한 강아지 두 마리는 다행히 건강해져서 출국 후 새 환경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영상을 전해왔다. 전염병 없는 환경에서 우리의 반려동물들이 행복하게 산책하고 뛰어다닐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재봉 수의사 (이리온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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