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정책의 실패가 드러나고 있다. 작년에 큰 폭으로 내려간 쌀값이 올해도 또 내려갈 전망이라고 한다. 쌀값이 떨어지는 까닭은 1인당 쌀 소비량이 지난 40년 이상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까닭은 첫째 식생활이 개선되어 먹거리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쌀 자체가 그다지 훌륭한 영양공급원이 아닌 탓이다. 셋째는 조리와 설거지에 많은 노동시간을 필요로 하는 쌀밥 위주의 식사(=한식)가 도시민의 생활문화에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1인당 쌀 소비가 줄어도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전체 쌀 소비량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는 정점을 찍고 곧 감소추세로 돌아선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분명한 전망은 앞으로 사회 전체의 쌀 소비가 결코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재고 비축분이 한 해의 쌀 생산량을 훌쩍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쌀이 팔리지 않으니 농민들은 생계의 곤궁을 호소한다. 적정수준의 쌀값을 보장하라는 농민단체의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 농업의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작년 소비자가격 기준 쌀값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이것도 많이 내려간 결과다. 쌀을 자급하는 나라임에도 한국의 쌀값은 국제 평균가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비싸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쌀 수매가를 책정하는 한편 쌀값을 떠받치기 위해 다른 곡물에도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쌀값이 전체 곡물가를 견인하여 유럽산 수입과자보다 국산 질소과자가 더 비싸졌다.
즉, 우리 농업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한 측면은 쌀값 하락으로 농민들이 손해를 입고 있으며, 이 상태로는 농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또 한 측면은 쌀값 부양으로 인하여 소비자들이 손해를 입고 있으며, 여기서 쌀 소비를 더 늘리기란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혹자는 쌀 시장 개방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곤 하지만, 관세화를 미루면서 들여온 의무수입량은 국내 소비량의 9% 정도에 불과했다. 수입쌀은 공급량 초과를 일으킨 여러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지 문제의 주요 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더구나 쌀 시장 개방을 막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이 비싼 식품가에 신음하는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농업 문제의 주요 원인은 식량안보를 식량자급과 동일시하는 착각이다. 우리 정부는 식량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업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비농업인이 농지를 구입할 수 있게 한 결과, 상속세를 피하려는 부유층이 앞다투어 농지를 늘렸다. 또한 정부는 쌀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농지면적에 비례해 직불금을 지급했다. 해마다 최순실 예산보다 많은 직불금을 지급한 결과, 대지주와 소농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작년에는 상위 9%의 지주가 전체 직불금의 절반을 가져갔다. 농업인구는 전남에 가장 많이 거주하지만 1인당 직불금 수령액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의 강남 3구였다. 지난 10여 년 사이 갑자기 등장한 신흥 지주들의 농토에서 쏟아져 나온 쌀이 공급량 초과를 이끌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싱가포르는 식량을 자급하는 대신 식품 관세를 없애고 수입처를 다양화해왔다. 그 나라는 2012년 식량안보지수가 처음 발표된 이래 매년마다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수입한 식량을 제3국에 되팔아 막대한 이득까지 얻는다. 이 한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식량자급이 식량안보의 전부는 아니다. 식량안보는 안전하고 신선한 식품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 쌀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쌀 직불금 제도는 대지주를 키우고 소농을 몰락시켰다. 쌀값 부양은 살인적인 가격 거품을 만들었다. 차라리 거기에 들이는 예산을 모든 농민들에게 조건 없이 분배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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