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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대포폰도 안 쓰다니

입력
2017.02.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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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야, 가스검침 나왔다고 문 막 열어주면 안 돼.” 하도 여러 번 당부를 하는 게 오히려 수상한 마음이 들어 엄마를 닦달했다. “왜 그래? 엄마 뭐 사기 당했어? 그랬어?” 아니라고 딱 잡아떼더니 결국 고백을 한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검침원이라며 찾아왔고 “아니, 보일러가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모르셨어요? 오늘내일 터지겠어요!” 호들갑을 떠는 남자에게 홀랑 넘어가 30만원을 내고 수리를 받았단다. 그래도 몇 만원은 깎아준 거란다. 엄마는 남자를 보내고 나서야 가만있자, 내가 지금 사기를 당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집 앞 파출소로 뛰어갔다. 남자의 연락처를 혹시 아느냐는 경찰의 말에 엄마는 전화번호를 내놓았다. “그 남자가 엄마한테 연락처를 줬다고?” “이거 혹시 또 고장 나면 어떡하냐고, 전화번호 내놓으라고 했더니 주더라고. 처음엔 안 줄라고 했지, 그 놈도. 고장 나면 가스공사로 바로 연락하면 된다면서.” 맙소사. 검침원을 사칭했던 남자는 그렇게 싱겁게 잡히고 말았다. 파출소에 나란히 앉아 엄마는 30만원을 도로 내놓으라 호통을 쳤다. “아줌마, 그거 제가 고친 건 맞잖아요. 제가 원래 보일러 수리하던 사람이에요. 가짜로 고친 거 아니거든요. 한 번만 봐주세요.” 엄마는 그래서 10만원만 돌려받고 합의를 끝냈다. “지도 우쨌거나 고친다고 재료비는 안 들었겠나. 아니야, 진짜 보일러가 위태위태하기는 했어. 방도 안 뜨시고.” 원래 방이 안 뜨셨다니 나도 할 말은 더 없다. 그나저나 그 남자는 이왕 사기를 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대포폰 정도는 써야하는 거 아닌가. 대통령도 쓰는 대포폰,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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