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후견 청구 취하한 친척
검찰이 나서 임시 후견인 지정
석연찮은 당사자 명의 불복 신청
제3자 후견 반대한 친척 배후 의심
검찰이 홀로 조현병(정신질환의 일종)을 앓아온 중년 여성을 돌봐줄 후견인을 선임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그의 30억원대 재산을 친척이 관리하겠다며 후견 청구를 했다가 원치 않게 제3자가 선임되니 돌연 취하해버려 위기의 여성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못 받게 된 사정(본보 1월 3일자 12면)을 알고는 대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또 석연찮은 제동이 걸렸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판3부(부장 황종근)는 미혼으로 남편과 자식이 없는 김모(56)씨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서울가정법원에 최근 청구했다. 한정후견은 후견인이 요양시설 입소 등 신상 결정권과 예금 처분 등 재산 관련 대리권을 법원 허가에 따라 성년후견보다는 제한적으로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원 가사20단독 김성우 판사는 긴급한 보호의 손길이 필요한 김씨 처지를 감안해 검사가 청구한 다음날 성년후견 전문가그룹인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이하 후견지원본부)를 임시후견인으로 다시 선임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11월 김씨의 정신적 제약 정도가 혼자선 삶을 살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한정후견을 인용하면서 김씨의 신상 관리와 재산 보호를 모두 후견지원본부에 맡겼다. 하지만 김씨를 지켜주겠다며 후견을 청구한 사촌동생 K(45ㆍ호주 거주)씨는 법원 결정 뒤 돌변해 항고하더니 급기야 청구 자체를 취하해버렸다. 자신이 후견인 후보로 내세운 김씨의 먼 친척 A(62)씨가 아닌 제3자가 선임되자 아예 없던 일로 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의 정식 결정 석 달 전부터 임시후견인 자격으로 김씨를 돌봐주고, 재산 관리 절차를 밟아오던 후견지원본부는 곧바로 후견인 자격을 잃었다. 후견이 필요한 대상의 복리보다는 재산 등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후견을 청구했다가 뜻대로 안 되면 취하하면 그만인 현행 성년후견제의 ‘입법 구멍’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의 청구로 임시후견인이 김씨가 직면한 채권가압류 등 법적 문제 등에 대응하리라 예상됐지만 또 제동이 걸렸다. 김씨 명의로 항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씨 사건을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배후에 A씨가 있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법원이 긴박하게 임시후견인을 선임해도 이해관계자가 불복하면 후견 결정 확정까지 후견인이 아무 권한도 행사할 수 없어 재산 유용 등 문제가 생길 소지가 크다. 이 역시 개선돼야 할 입법의 허점으로 지적된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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