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 착한대출로 어려운 이웃에 희망
돈 빌려 달라는 사람 얼굴을 직접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출은 1인당 최대 100만원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해 준다. 그것도 3無(무이자ㆍ무담보·무보증)가 원칙이란다. 금융복지를 표방하는 소액대출단체‘㈔더불어사는사람들’ 이야기다.
“돈이 많네” “곧 망하겠네” 등 주변의 우려와 의심 속에 시작한 더불어사는사람들이 이달로 첫 대출을 시작한 지 5주년을 맞았다. 설립은 2011년 8월에 했는데, 홍보도 안 된데다 설마 그 조건에 진짜 빌려주겠냐는 세간의 의구심에 넉 달 넘게 개점 휴업한 탓이다.
그래도 5년간 성적표는 알차다. 970여건의 대출 건수에 총 대출액은 3억5,000만원, 회수율은 84%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회수금 2억4,000만원을 제외한 1억1,000만원이 지금도 없는 이들의 쌈짓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의 대출기준은 딱 하나. 세상 사람 모두 하나쯤은 있다는 ‘눈물 없인 못 들을 사연’이다. ‘음식을 씹을 수가 없어 틀니를 꼭 해야 하는데 형편이 안 좋다’‘밀린 고시원비를 못 내 추운 겨울에 쫓겨나게 생겼다’ 등 내용도 가지가지다.
이창호(59) 상임대표는 “대출 신청자가 사연을 홈페이지에 올리면 내용을 꼼꼼히 살피는 것으로 대출 진행을 시작한다”며 “컴퓨터 사용이 익숙지 않은 노년층은 전화상담도 받는다”고 했다.
말이 상임대표지, 이 대표는 대출상담과 진행을 비롯해 대출금 회수 및 미수금 관리까지 모든 일을 서울 불광동 조그만 사무실에서 직원도 없이 혼자 무보수로 처리한다. 무보수란 말에 ‘가정은 어쩌냐’고 묻자, “물려받은 것도 좀 있고, 부인과 두 아들이 이해해 줘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 대표는 껄껄 웃었다.
각박한 사회를 상대로 벌이는 그의 유쾌한 싸움을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이 대표는 공고를 졸업한 후 1973년 GM코리아에서 생산직으로 첫 직장생활을 했다.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직장생활 중에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다녔는데, 거기서 신용협동조합 이론에 홀딱 빠진 거예요. 노동자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4년간 직장생활을 끝낸 그는 두레생활협동조합에 취업하고, 서울 모 지역신용협동조합 비상근 감사 등을 맡으며 조합을 통한 이웃들 간의 삶을 꿈꿨다. 하지만 점차 어려워지는 가정형편을 마다할 수 없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업체에 다시 취업해 10여년을 다닌 뒤 지난 2007년 퇴직했다.
서민·이웃들끼리 조직적으로 서로 돕고 살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그는 중소업체 퇴직 후 2008년 창업자금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정부위탁기관에 취업해 ‘착한 대출’을 익혔다. 문제는 정부정책에 따라 대출 조건과 금액 등이 계속 바뀌다 보니 지속적이지 못한 부분이 마음 한 구석에 계속 걸렸다. 결국 그는 2011년 8월 자신이 출자한 2,500만원과 뜻을 함께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500만원가량의 지원금을 받아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설립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이자소득이 없는 만큼 후원금과 출자금으로 유지된다. 그가 무보수로 일하는 이유도 자신의 월급만큼 대출액이 줄기 때문이다. “아무리 줄여도 작년에만 980만원을 사무실 임대료 등 운영비로 썼어요. 그래도 지난해 가장 큰 후원자가 1,000만원 정도 후원해 줘 잘 이어 가고 있습니다.”
꼭 대출이 아니더라도 대출 신청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돕는 것 역시 더불어사는사람들의 운영 및 유지방식이다.
“30대 남성이 어머니의 MRI 촬영비가 없다며 100만원 대출을 신청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돈을 빌려 주기 전에 신청자 거주 지역의 병원들에 전화를 걸어 MRI 무료 촬영이 가능한지 물어봤죠. 난색을 표하는 대형 병원에 우겨 MRI 장비가 있는 중소형병원을 소개받아서 대출신청자와 병원을 같이 찾아가 상황 설명을 해 일이 잘 풀렸습니다.”
금융기관이면 금융 거래를 통한 이자수익이 목적이지만, 더불어사는사람들은 대출신청자의 고민해결이 우선이라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신들의 업무를 대안금융과 금융복지라고 표현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신용협동조합 설립을 꿈꾸는 그는 요즘 대출을 받아 상환하는 이들에게 ‘출자’를 권한다. 대출을 이용한 사람이 1만원이라도 출자를 하면 자연스럽게 저축이 되고, 조합원으로서 주인의식도 생겨 다시 대출을 이용할 때는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는 거다. 그는 “최대한 많은 이에게 대출해 주려 한도를 1인당 최대 100만원으로 정하기 전 180만원까지 대출해 준 신청자가 아직 갚지 않은 경우도 있다”면서도 “더불어사는사람들이 안착할 수 있었던 건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출 이용자가 더 많이 늘었으면 한다고 했다. 돈 떼일지 모른다는 의심보다 자신처럼 사람에 대한 믿음을 더 크게 가지는 게 진정한 신용협동조합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기자 양반, 기사 좀 잘 내줘요. 그래야 아직 이용 못 해 본 분들도 많이 신청하지.”
이태무 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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