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ㆍ역할 강화되며 총선 방불
주민 갈등 심화 등 부작용도 커

지난해 12월 충남 서산시 대산읍의 한 마을에서는 이장 선출을 위한 마을 총회가 열렸다. 2명의 후보를 놓고 실시한 주민 투표에서 A씨가 당선됐지만, 주민들은 A씨를 읍사무소에 이장으로 추천하지 못했다. 상대인 B씨가 A씨의 출마 자격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B씨는 A씨의 마을 거주기간이 시에서 조례로 규정한 기간에 미달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대산읍사무소는 시청의 유권해석을 받아 이장을 다시 뽑으라는 공문을 마을에 보냈다.
민의를 모아 행정기관에 전달하고, 각종 시책을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등 행정기관과 주민간 가교역할을 하는 통ㆍ리장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 마을 주민들이 추대하거나 순번을 정해 돌아가는 방식은 옛말이 됐고, 일부 지역은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과열 선거로 주민 갈등으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제주도 서쪽 한림읍에 위치한 비양도는 주민 60여명이 사는 조그만 섬마을이지만 과거 케이블카 사업 추진과정에서 마을 여론이 둘로 갈라진 뒤 이장 선거때마다 고소ㆍ고발과 법적 분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치러진 선거는 후보자 비방과 탄원서 제출, 선거관리위원 집단사퇴 등 혼란을 빚으며 사흘이나 미뤄진 끝에 겨우 선거를 실시했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전북 부안 위도면 한 마을에서는 두패로 갈린 주민들이 2명의 이장을선출해 면사무소에 추천하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 강서구 녹산동 생곡마을에서는 통장의 연임을 둘러싼 갈등으로 주민들에게 최루가스를 뿌린 50대가 경찰에 입건되는 일도 벌어졌다.
선거전이 치열한 만큼 주민들에게 공약까지 제시하며 진지하게 지지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회의원이나 지방 선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대 비방과 결과에 불복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경북 영양군의 한 마을에서는 이장 선거를 앞두고 현 이장의 사생활을 비방하는 말들이 나돌았다. 이를 근거로 주민 2명이 출마의사를 표명했으나 마을 어른들이 “현 이장이 그래도 일을 잘 하지 않느냐”며 만류하는 바람에 현 이장의 연임으로 결론이 났다.
경기 양주시 회천 2동은 시의 통ㆍ리장 후보자 심사기준표를 근거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지난달 29일 C씨를 뽑았지만 경쟁자인 D씨가 “C씨가 아파트 내 게시판에 홍보물을 부착했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일었다.
이장직에 대한 경쟁이 치열한 것은 권한과 역할의 변화 때문이다. 단순한 행정기관의 심부름꾼에서 벗어나 마을의 대표이며 행정의 최일선 조직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처우도 한달 20만원의 수당과 명절 상여금 200%에다 월 2회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면 2만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자치단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고등학생과 대학생 자녀에게 장학금도 지급된다. 마을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사업 등에 대한 보이지 않는 권한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통ㆍ리장이 상한가인 것은 아니다. 천안시 성거읍의 경우 41명의 이장을 2년마다 새로 임명해야 하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수십가지의 영농관련 업무를 비롯해 농배수로 사업 등 주민 동의가 필요한 사업의 경우 일일이 마을 주민을 찾아가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은 “이장의 역할이 커지면서 평균연령이 젊어지고 법령이나 자치제도 등을 꼼꼼하게 공부해 전문성을 갖추는 사람도 늘고 있는 추세”라며 “하지만 일부 농촌지역은 지원자가 없어 한 사람이 장기간 직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산=이준호기자 junhol@hankookilbo.com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이종구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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