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의 차기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그간 여의도에서 ‘까칠남’으로 통했습니다. 엘리트 학자 출신에 한 번 원칙을 세우면 좀처럼 굽히지 않는 꼿꼿한 성격,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사람 많은 식당에서도 구석 자리를 선호한다고 해서 ‘샤이남’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런 유 의원이 요즘 '젠틀맨'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4일 열린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 연단에 오른 유 의원은 "저보고 까칠하다고 하는데 사실은 굉장히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해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셀프디스’하면서 앞으로 달라질 모습을 기대해달라는 선언으로 들렸습니다.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는 두 팔로 하트를 그리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지요.
특히 30일 기자간담회와 직후 열린 기자단 오찬은 유 의원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오찬에 참석한 기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종이에 적으며 소개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 기자가 정치부에 오기 전 다른 부서에서 썼던 특종기사를 기억해 말하며 관심을 보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동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진 건 물론입니다. 대화 도중 놓친 부분은 바로 되물으면서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이 주문한 떡만둣국에 들어있는 왕만두를 앞에 앉은 기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다 정작 본인이 먹을 게 없어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식사를 끝내곤 “너무 많이 줬나”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은 옆집 아저씨 같았습니다. “요즘 운동을 안 해 배가 나온다”며 슬쩍 자기 배를 어루만지는 모습은 또 어떻고요.
선거캠프의 총괄로 영입한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큰 누나”라는 친근한 표현을 쓰며 소개한 건 캠프에서도 의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유 의원은 “2000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여의도연구소장 재직 시절 진 전 장관과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줄곧 ‘누님, 누님’하며 친하게 지냈다”며 “캠프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조정해주실 분”이라고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유 의원과 진 전 장관은 역대 가장 치열했던 경선으로 꼽히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각각 박근혜캠프와 이명박캠프의 핵심으로 활동했는데, 다시 ‘동지’가 된 셈입니다.
이런 유 의원의 변신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에 대한 고민의 표현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유 의원 본인도 “현장에선 분위기가 정말 좋은데 숫자(지지율)가 영 안 나온다”고 걱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유 의원의 이미지 변화, 여기다 보수의 개혁을 외쳐온 그가 내놓을 정책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호응할지 흥미롭게 지켜볼 대목입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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