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연일 추락에도
“그때 그때 달라지는 것” 여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또다시 대선 전 개헌카드를 들고 나왔다. 정파를 초월한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이라는 새로운 제안이지만 대선 전 개헌에 부정적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제외한 세력을 모아 ‘반문 빅텐트’를 구축하려는 행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다는 평가다. 귀국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던 지지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선까지 떨어지자 캠프 주변에서는 다급해진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31일 예비캠프인 서울 마포구의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선 전 개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당과 정파, 대표들이 개헌추진협의체를 만들어 개헌을 본격 추진하자”고 말했다.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 주장도 되풀이했다. 반 전 총장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도 접촉해, 협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그러나 거취는 아직 결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설 연휴까지 여야를 아우른 중도지대 정치인들을 잇따라 만나며 향후 행보를 저울질했다. 반 전 총장은 “(만난 분들도) 패권정치를 몰아내야 한다는 데 이견 없이 공감했다”며 장기적으론 ‘빅텐트’ 연대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어 “입당이나 창당 여부는 빠른 시일 내에 결단을 해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국정농단 사태로 매 주말 열리는 촛불집회를 두고는 “광장 민심이 초기의 순수한 뜻보다는 약간 변질된 면도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보수 언론인의 인터넷방송에 출연한 것과 관련해선 “직권 정지 상황에서 인터뷰한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반 전 총장이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예고하자 정가에서는 바른정당 입당설 등도 나돌았으나 이렇다 할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때문에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고 있는 반 전 총장이 개헌을 동력으로 반등을 노리며 간담회를 자청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한 때 30%에 가깝던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귀국 이후 20% 아래로 떨어졌고 급기야 최근 15%대까지 찍어 고민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지지율은 그때 그때 달라진다”며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낙관했다.
캠프에서는 개헌을 고리로 ‘반문(재인) 빅텐트’ 구축에 성공한다면 문 전 대표와 양강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 반 전 총장의 한 참모는 “그래도 나머지 주자들 중에는 우리가 가장 앞선다”며 “빅텐트가 성사되면 후보는 반 전 총장으로 압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당분간 제3지대에 머물며 독자적으로 세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합류 가능성이 높은 건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이다. 공공연하게 반 전 총장을 지지해온 정진석ㆍ박덕흠ㆍ성일종 의원을 비롯해 이명수 이종배 경대수 박찬우 권석창 의원 등이 이날 오후 따로 만나 거취를 논의했다. 한 의원은 “당장 탈당하기 보다 당내에서 반 전 총장을 도울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날 반 전 총장의 제안에 각 진영의 대선주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문 전 대표 측은 “국민은 개헌이 아니라 개혁을 원한다”고 일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도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바른정당에서도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모두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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