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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서툴고 실수해도… 언제나 괜찮다는 반려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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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서툴고 실수해도… 언제나 괜찮다는 반려동물들

입력
2017.01.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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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가장 사랑한 사람이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면 무엇일까. MBC 스페셜 노견만세 캡처
반려동물을 가장 사랑한 사람이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면 무엇일까. MBC 스페셜 노견만세 캡처

함께 사는 나이든 고양이가 아팠다. 길에서 살던 아이라서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수의사 선생님 추정 최소 열여섯 살. 길에서 6년을 살았고, 가족으로 10년을 살았다. 노령이니 더 세심히 살펴야 하는데 방심하고 있다가 한밤중에 쩔쩔맸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했다. 주치의 선생님도 한 달 사이에 노령의 동물 환자가 넷이나 떠났다고 잘 살피라고 한다. 지인들이 돌보는 나이든 반려동물도 최근 여럿 떠났다. 겨울은 생명력이 떨어지는 계절인가.

2년 전 겨울, 돌보던 고양이가 급작스럽게 떠나버린 후 겨울이 두렵다. 비가 오기 전 비를 맞지 않도록 주변을 살핀다는 ‘비설거지’라는 단어처럼 돌보는 아이들에게 비설거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기는커녕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 보냈다. 이별의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 전에 열아홉 살 노견을 떠날 보낼 때는 이별의 시간은 충분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에 좌절했다. 녀석은 19년 평생 나를 대단한 존재로 생각했을 텐데 노화, 질병, 죽음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고, 초라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도 살아간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반려동물과 이별하고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는다. 특히 어떤 치료를 할지, 치료를 계속할지, 안락사를 할지 고민했던 이들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죄책감으로 남는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을 그들에게도 전한다. 그 선택이 최고는 아닐 수 있지만 최선이었으니 죄책감은 갖지 말라고. 아이를 가장 사랑한 사람이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면 무엇일까. 우리는 늘 옳은 선택만 할 수 없고, 생사를 주관할 능력도 없다.

여러 동물과 가족으로, 동네 길고양이를 가족처럼 돌보며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나는 매번 실패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처음 노견을 돌볼 때는 제대로 뒷바라지할 자신이 없어서 두려웠다. 아이들과 이별하며 후회와 자책도 했다. 그런데 그 덕분에 이후에 가족이 된 아이들을 더 잘 돌보게 되었다. 먼저 간 아이들이 서운해 할까? 잘하고 있다고 흐뭇해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서툴고,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툴다. 이젠 뭐든 잘 대처할 것 같은데 또 실패한다. 내 일 바쁘다고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무심한 듯 핥아주고, 쓱 비비고 지나가면서 용서한다. 그렇게 인간의 영혼을 위로한다. 게다가 동물은 무작정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도 아니었다. 복잡한 인간세계와 인연을 맺다 보니 가끔 내 도움이 필요할 뿐. 그럼에도 어느 관계보다 미안한 건 그들의 삶이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인간과 비교해서일 뿐 동물들은 그들만의 삶의 속도로 걸어간다.

반려동물은 '삶은 행복'이라고 말해주는 스승과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려동물은 '삶은 행복'이라고 말해주는 스승과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프랑스의 문호 장 그르니에의 저서 ‘어느 개의 죽음’에는 길에서 만나 오래 함께 살았던 개 ‘타이오’를 떠나 보내며 느낀 삶, 죽음, 숙명, 고통, 행복 등에 관한 사유가 빼곡히 적혀있다. 저자는 스스로를 타이오의 하인이라고 자처하는데 그에게 타이오는 자연과 일체를 이루지 못해 불행한 인간과 달리 대자연 그 자체이고, 삶을 고통으로 여기는 인간에게 삶은 행복이라고 말해주는 스승이다. 타이오를 안락사로 보내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만 그 결정은 ‘사랑’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수많은 우리의 판단이 때로는 오답이지만 언제나 사랑이었음을.

저자는 쓴다.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도, 심지어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고. 우리는 그러고서도 ‘산다’라고 말한다고. 그러게. 나는 여러 아이들을 노화로, 사고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떠나 보내고도 살아남았다. 삶은 행복이라고 말해주는 동물 가족이 여전히 곁에 있기에. 너무나 살고 싶어지도록 사랑을 가르쳐주는 그들이 있기에.

며칠 전 마루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만날 벌러덩 누워있는 녀석을 뭘 그렇게 찍냐”며 웃는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창완 아저씨가 매일 말하는 문장이 떠올랐다. “오늘도 추억이 됩니다.”

나는 추억이 될 오늘을 기록하는 중이다. 언젠가 그리워질. 다시 못 올 오늘을.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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