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들에게 “나”라는 제목을 주고 글을 쓰라고 하면 제일 먼저 쓰는 문장 중 하나다. 필자는 몇 년 전 춘천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초등학교 20 여 곳을 돌며 글쓰기 강의를 했다. 신기하게도 초4 남자 아이들 중 대부분이 “나는 인간이다”라고 외쳤다. 왜 열 살 무렵의 어린이들이 이런 선언을 하는 것일까? 그 이전까지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일까, 이제야 내가 부모의 애완동물이나 코 흘리는 철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걸까. 여자 아이들은 절대 이런 글은 쓰지 않는다. 아마도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자기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이다. 정말?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뭘까? 배부르면 먹고 등 따뜻하면 자는 것, 이건 동물도 하는 일이다. 기본 조건이 충족되면 인간은 반드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에 의하면 생리적 욕구가 해결된 인간은 안전을 원한다. 툭하면 지진이 나고 사고가 일어난다면 인간답게 살기 어렵다. 안전이 확보되면 그 다음에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매슬로우 분류에서 소속감은 사랑 받고 싶은 욕망과 동급이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거나 소속되거나’를 원한다. 독일의 영화감독 파스빈더는 “덜 사랑할수록 더 권력을 원한다”고 했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투쟁이며 쟁취다. 전쟁이 끝나면 베이비 붐이 일어난다. 권력에서 멀어지므로 사랑이 살아나는 거다.
소속되고 사랑한 다음엔? 인정받고 존경 받길 원한다. 글을 쓰고 동영상을 찍고 SNS를 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높은 욕구는 자아실현이다.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삶을 산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자신이 가야 할 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자아는 실현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기에 언제든 타인으로 교체될 수 있다면 자존감은 낮아진다. “옆 집 수진이는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는데”라는 소리를 들으면 싫은 거다. “수진이네 아빠는 연봉이 그렇게 높다는데”하는 소리도 싫은 거다. “수진이네 엄마는 부동산으로 한 몫 챙겼다는데”라고 해도 안 된다. 수진이네가 이사를 가든가 우리집이 떠나든가 해야 하는데 어딜 가나 또 다른 수진이네가 있다는 게 문제다.
설 연휴 때 만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명절엔 처가에 안 갔다. 20년 만에 처음이다. 애들과 처만 보내고 혼자 책 읽었다. 첫날은 미안했는데 둘째날은 너무 편하더라.” 빙고! 그는 자아실현을 한 거다. 본가에서도 괴롭지만 처가에 가도 힘들다. 친척 아이들에게 세배 돈을, 장모님께 접대 고도리로 준조세를 뜯긴다. 아내가 일을 해도 불안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불안하다. 아내의 오빠는 나보다 연하인데도 불편하고 아내의 남동생은 나랑 맞먹으려 해서 불쾌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1차 욕구조차 해결난망이다. 조선시대 종갓집 며느리처럼 싱크대 반경 1m를 떠나지 못하는 부인들도 자아실현 따위는 위선이다. “사내가 부엌 출입이라니!”를 외치는 어르신들은 태극기가 자아실현인줄 알고 사셨기에 대화 자체가 곤란하다. 부모 부양 의무를 진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이 독립하고 나면 노후 대책이라곤 전무한 세대인 40,50대 가장은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 인간의 가장 숭고한 욕구라는 자아실현이 뭔지도 모른 채 늙어간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남자의 인생은 3단계로 나뉜다. 태어나서 스물 다섯까지는 배움에 전념하는 시기다. 스물 다섯에서 쉰까지는 가정이 최우선이다. 50이 된 남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숲으로 간다. 왜? 자신을 찾기 위해서. 숲으로 가고 싶은 남자들은 연휴 끝날 소주 잔을 기울였다. 아마존이 되고 싶은 여자들은 찜질방에 갔다.
명로진 인디라이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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