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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변수에 밀려 재정건전화법 ‘뒷전’… 장기 표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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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변수에 밀려 재정건전화법 ‘뒷전’… 장기 표류 가능성

입력
2017.01.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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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제출 석달 만에 첫 국회 심의… 국가채무 비율 GDP 45%내 제한

정계, 제왕적 대통령제 타파 위해 정부 예산편성권 국회 이관 논의

野 “세수 확충 없이 지출만 줄여” 일각 “기재부 권한만 확대” 지적도

재정건전화법 주요 내용
재정건전화법 주요 내용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나랏돈 지출을 법으로 억제하는 재정건전화법이 국회에서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개헌이나 조기대선 등 정치 상황과 맞물려 국회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는데다, 수입(세수)을 늘릴 생각은 없이 지출(세출)만 억제하는 일방적 ‘재정 다이어트’가 복지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16, 17일 전체회의와 소위원회를 열고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심의했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3개월 만에 처음 열린 회의다.

재정건전화법은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이내로 관리하고(채무준칙)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묶는 것(수지준칙)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국가채무비율이 2007년 28.7%에서 작년 38%까지 가파르게 상승하고, 저성장ㆍ고령화에 따라 재정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는 만큼 법으로 지출 상한을 정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다.

정부는 지출을 억제하지 않고 이대로 가면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 이상으로 치솟고, 국민연금 사학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이 모두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최근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대규모 일자리 창출 방안 등 대선 주자들의 ‘묻지마 공약’이 남발되고 있어 이런 입법 취지는 새삼 주목 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시기가 걸린다. 최근 정치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타파를 위한 개헌 논의가 불 붙으면서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국회에 이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행 헌법상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삭감할 수 있을 뿐, 증액에는 기재부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를 견제하는 대표적 권한인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예산편성권 전체 또는 일부가 국회로 이관되면 국회법 혹은 국회 관련법 안에 재정건전화에 대한 별도의 체계가 있어야 한다”며 “이럴 경우, 재정건전화법 문제는 헌법 개정 논의와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조기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서 차기 정권의 재정 역량을 출발 전부터 제약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한 관심 자체가 높지 않다.

세부 각론에서도 쟁점이 적지 않다. 야권에서는 재정건전성 확보의 핵심인 증세 등 세입기반 확충에 대한 계획 없이 오로지 지출 관리에만 방점을 찍은 ‘반쪽 재정건전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는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복지수요 확대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고, 나아가 재정건전성을 명분으로 복지지출을 삭감하거나 동결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일각에서는 19대 국회(2012~2016년) 국회 당시만 해도 정치권이 주도한 재정준칙 법제화에 반대하던 기재부가 작년부터 갑자기 재정건전성을 부르짖으며 공세적 태도를 취하는 배경에 현 박근혜 정부의 ‘복지 축소’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나 재정건전성 확보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재정건전화법이 그 열쇠는 아니라는 입장”이라며 “정부가 스웨덴의 재정준칙 입법 사례를 이야기하지만 이미 대규모 복지 인프라를 갖춘 나라와, 복지 논의가 이제서야 본격화되는 한국은 다르다”고 말했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재정준칙 법제화가 불가피하다면 조세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6.1%)까지 끌어올리는 등 세입확충도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한국 조세부담률은 19.4~19.5% 수준이다.

일각에선 재정건전화법이 ‘기재부 권한만 늘리는 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 법안은 중앙ㆍ지방정부, 사회보험 등 각 부문별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하고 그 이행 상황을 기재부 장관이 주재하는 재정전략위원회(신설)에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각 부처 장관이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법안을 낼 때도 기재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기획재정소위에서 “다른 부처 정책활동이 결국 기재부 통제를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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