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테니스 최강자 로저 페더러(36ㆍ스위스)와 서리나 윌리엄스(36ㆍ미국)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듯했다. 두 세 시간 이상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테니스 종목의 특성상 30대 중반을 넘은 이들에게 한계가 찾아온 것 아니냐는 평도 들어야 했다.
2012년 윔블던 우승 이후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었던 페더러는 무릎 부상 탓에 지난해 하반기 개점 휴업했다. 11월에는 2002년 이후 14년 만에 세계 랭킹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윌리엄스 역시 2016년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잇달아 패하며 입지가 흔들렸고, 9월 US오픈 우승을 차지한 안젤리크 케르버(29ㆍ독일)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둘은 지난해 부진을 딛고 나란히 호주오픈에서 메이저 왕좌에 복귀했다. 페더러는 29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숙적 라파엘 나달(31ㆍ9위ㆍ스페인)을 3시간37분 혈투 끝에 3-2(6-4 3-6 6-1 3-6 6-3)로 꺾었다. 이로써 2012년 윔블던 이후 4년 6개월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 기록을 18회로 늘렸다. 페더러는 또한 이번 우승으로 17위에서 10위로 랭킹을 7계단 끌어 올렸다.
페더러는 이번 대회 우승까지 세계 랭킹 10위 이내 선수들을 4차례나 상대했다. 3회전에서 토마시 베르디흐(10위ㆍ체코), 4회전에서 니시코리 게이(5위ㆍ일본)를 만났고 준결승에서 스탄 바브링카(4위ㆍ스위스), 결승에서는 나달을 연파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랭킹 10위 이내 선수를 4번이나 꺾고 우승한 사례는 1982년 매츠 빌란더 이후 페더러가 35년 만이었다.
윌리엄스는 28일 여자 단식 결승에서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37ㆍ17위ㆍ미국)를 2-0(6-4 6-4)으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결승까지 7경기를 치르면서 한 세트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경기력이었다. 물론 10위 이내 선수를 만난 것이 준준결승 조안나 콘타(9위ㆍ영국)가 유일했을 정도로 대진운이 따른 것은 사실이지만 무실 세트로 우승했다는 것은 윌리엄스의 건재함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윌리엄스는 케르버에게 뺏겼던 1위 자리도 되찾았다.
한편 호주오픈 우승 후 페더러가 곧 은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페더러가 29일 우승을 차지한 뒤 코트에서 팬들에게 “내년에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며 “그렇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훌륭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인사한 것이 여러 추측을 낳고 있다.
아무래도 2018년 호주오픈이 개막되기 전에 은퇴를 선언할 예정이기 때문에 2018년 대회 타이틀 방어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는 얘기다. 페더러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내가 만일 부상이라도 당하면 내년 대회에 못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의구심이 계속되자 페더러는 “올해가 마지막 호주오픈이라는 계획이 서 있는 것은 아니다”며 “내년 대회에도 출전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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