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요즘 앙골라 국영 석유 회사인 ‘소난골’ 때문에 속이 타 들어 간다. 소난골이 자금난을 이유로 지난해 6월 지급했어야 할 ‘이동식 석유시추선’(드릴십) 대금 1조원을 한없이 뒤로 미뤄 현재로선 대금을 언제 받을 지 기약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우조선과 산은은 소난골에 대금 지급을 독촉하는 것 외 법적 조치 등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소난골은 지난 2013년 대우조선과 12억4,000만 달러(약 1조4,477억원)에 드릴십 2척 계약을 맺었다. 애초 맺은 계약대로라면 소난골은 지난해 6,7월에 남은 대금 1조1,587억원을 치르고 드릴십 2척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나 소난골은 드릴십이 완공된 뒤에야 자금난과 유가 하락 등을 이유로 드릴십을 가져갈 상황이 못 된다며 인도 시기 연장을 요청했다. 대우조선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인도 시기를 9월로 한 차례 연장해 줬지만 그 뒤에도 소난골은 드릴십을 가져가지 않았다. 현재 대우조선은 인도 시기를 ‘미정’으로 바꾼 상황이다.
소난골처럼 발주처가 자금난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인도 시기를 무기한 연장한 사례는 그 동안 전무했다는 게 업계와 금융당국 설명이다. 통상 발주처가 곧 바로 인도할 여력이 안될 땐 완공 전에 대금 일부를 더 지불하고 인도 시기를 미루는 게 하나의 관례처럼 굳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힘의 균형 추는 대우조선이 아닌 계약을 일방적으로 어긴 소난골로 쏠려 있다. 현재 대우조선은 소난골을 대신해 드릴십을 운영할 회사까지 찾아주고 있는 것은 물론 소난골 입장에서 대금을 수월하게 치를 수 있도록 갖가지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다. 1조원 대금을 나눠 받고 이 중 20%는 드릴십 운영사에 지분을 투자해 배당 형식으로 받겠다는 방안까지 내 놨다. 이는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들 만큼 상당한 파격 조건에 해당한다.
이 같은 대우조선의 조치는 일종의 ‘목 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파기’ 격이다. 당장 1조원의 대금이 들어와야 4월부터 줄줄이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만큼 국제 소송을 제기해 소난골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보다 협상으로 대금지급 시기를 앞당기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소난골이 그 동안 대우조선에 주문한 물량만 17조원치에 달해 귀한 고객으로 꼽히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산은 관계자는 “국제 소송으로 가면 대우조선이 이기지만 통상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 당장 돈이 급한 대우조선으로선 검토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며 “소난골도 이런 대우조선의 절박한 사정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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