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제8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아카데미상) 시상식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를 앞두고 지난 24일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각 부문별 후보를 발표했다. 화제의 중심에 오른 건 단연 ‘라라랜드’(감독 데이미언 셔젤)였다. 13개 부문에 14개 후보를 올리며 역대 최고 기록인 ‘이브의 모든 것’(1950) ‘타이타닉’(1997)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돼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백인 남성 후보 위주로 꾸려지며 인종 차별 논란을 피하지 못했던 아카데미상에 이례적으로 검은 바람이 분 점도 눈길을 끈다. 올해 시상식의 후보작 선정 결과를 두고 오가는 뒷이야기 4가지를 모아보았다.
‘라라랜드’ 역대 최다 14개 후보... 최연소 감독상 탈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라라랜드’ 잔치가 될 전망이다. ‘라라랜드’는 지난해 최고의 화제작답게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의상상 음악상 주제가상(2곡) 음향상 음향효과상 미술상 편집상 등 14개 후보에 올랐다. 역대 최다 수상 기록(11관왕)을 세운 ‘벤허’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아성을 깰 수 있을지도 눈길을 끈다.
특히 32세의 데이미언 셔젤이 감독상을 거머쥘 경우 아카데미상 역대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가 된다. 후보 지정만으로는 최연소가 아니다. ‘보이즈 앤 후드’(1991)로 당시 24세에 감독상 후보에 오른 존 싱글톤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글톤 감독은 같은 해 ‘양들의 침묵’을 연출한 조너선 드미 감독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 했다.
‘라라랜드’는 최근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최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 7개 부문의 트로피를 석권하며 골든 글로브 74년 역사상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다.
흑인 영화∙배우 강세… ‘구색 맞추기’ 우려
지난 2년간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흑인 배우가 단 한 명도 오르지 못하며 ‘오스카는 백인 중심적’(Oscars So White)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거듭된 인종 차별 논란을 의식한 덕분인지 이번 후보 선정에는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오명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눈에 띈다.
우선 남녀주연상과 조연상 후보 20명 중 35%인 7명이 유색인종으로 채워졌다. ‘펜스’의 덴젤 워싱턴과 비올라 데이비스, ‘문라이트’의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 나오미 해리스, ‘러빙’의 루스 네가, ‘히든 피겨스’의 옥타비아 스펜서, ‘라이언’의 데브 파텔가 그들이다. 이뿐 아니라 작품상 후보작 9개 중 3개가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와 덴절 워싱턴 감독∙주연의 ‘펜스’, 시어도어 멜피 감독의 ‘히든 피겨스’다. 흑인 감독 젠킨스은 감독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펜스’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비올라 데이비스는 아카데미상 역사상 배우상 부문에 3번 지명된 최초의 흑인 여배우가 되었다. 그는 지난 2009년 ‘다우트’로 여우조연상, 2012년 ‘헬프’로 여우주연상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흑인 수상자가 드물 경우 되려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흑인 후보의 대거 지정이 단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는 논란이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백인 위주로 꾸려졌던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진정한 반성을 토대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보여줄 지는 내달 26일 시상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가씨’∙’밀정’ 아카데미상 시상식 진출 좌절
개봉 전부터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해외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찌감치 ‘아가씨’의 아카데미상 후보 선정 가능성이 거론되었다. 지금껏 한국영화가 한번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기에 ‘아가씨’에 쏠린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작으로 ‘아가씨’가 아닌 ‘밀정’을 선택함으로써, ‘아가씨’의 아카데미상 시상식 참여는 아예 불발이 됐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아가씨’가 외국어영화상이 아니더라도 촬영상 분장상 의상상 등 기술부문 후보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이중 어느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밀정’ 역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
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는 24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르지 못한 11편의 수작 리스트에 ‘아가씨’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인디와이어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되지 못했지만, 류성희 미술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은 각각 미술상과 촬영상 후보에 오를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진단하며 “한국영화가 지금까지 한번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 받지 못한 만큼 ‘아가씨’가 이것을 바로 잡기를 바랐지만,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유감을 표했다.
최초 20번째 후보 지명… 트럼프에 ‘한 방’ 날린 메릴 스트립
메릴 스트립이 20번째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정되며 또 한 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의 기록을 다시 바꿨다. 영화 ‘플로렌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엠마 스톤(‘라라랜드’), 이자벨 위페르(‘엘르’), 루스 네가(‘러빙’), 나탈리 포트만(‘재키’)과 함께 경쟁하게 된다. 1980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그는 이어서 ‘소피의 선택’(1983)과 ‘철의 여인’(2012)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세 차례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선 후보로 총 29번 지명되었고 그 중 8번을 수상했다.
스트립은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차례 설전을 벌이며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일 진행된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공로상 수상 소감에서 트럼프가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며 모욕한 사건을 언급하는 등 트럼프를 ‘저격’하는 연설로 큰 박수를 받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SNS 자신의 계정에 “메릴 스트립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배우 중 한 명이고 대선에서 진 힐러리의 아첨꾼”이라며 “난 장애인 기자를 모욕한 것이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언론을 비판한 것”이라고 스트립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스트립이 이번에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며, 트럼프 대통령이 체면을 제대로 구기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그가 수상을 하게 될 경우 이번에는 어떤 수상 소감을 선보일지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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