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올 상반기 타결을 목표로 추진 중인 한국-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영토분쟁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이스라엘 산(産)으로 인정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이는 우리 정부가 친(親) 이스라엘 정책을 펼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한(對韓) 통상 압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선제적 대응 조치의 일환이라는 관측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한-이스라엘 FTA 협상에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한 원산지를 이스라엘로 인정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며 “이와 관련해 세부 품목과 규범을 현재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주형환 산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한-이스라엘 FTA를 상반기에 타결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스라엘측과 FTA 타결을 위한 핵심 사안인 양국 간 원산지 규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 5월 FTA 협상 개시에 합의한 이후 서안 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자국 원산지로 인정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구해왔다.
하지만 서안지구에서 생산되는 화장품과 와인 등의 제품에 대한 원산지를 이스라엘로 인정할 경우 만만찮은 국제적 논란이 예상된다. 해당 지역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불법적으로 강탈한 곳으로, 유럽연합(EU)은 2015년 11월 서안지구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정착촌’이라는 별도 표기를 붙이도록 해왔다. 미국도 지난해 1월 해당지역에서 생산된 수출품에 원산지를 ‘이스라엘’로 표기 못하도록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서안지구에 대한 원산지 문제를 놓고 고심해 왔다. 자칫하면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강제합병 행위를 국제적으로 인정해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이번 원산지 문제에서 이스라엘 요구를 수용한 데는 사실상 친 이스라엘 정책을 내세운 트럼프 정부와 대립 각을 세우지 않기 위한 현실적 판단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에 극우 강경파 유대인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을 내정하는 등 친 이스라엘 정책을 강화했다. 정부 관계자는 “서안지구 수출품을 이스라엘 산으로 인정하는 게 국제법적으로 위반사항은 아니다”라며 “한미 간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한 정무적 선택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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